2022-52. 시므온의 시간
설교자 김기석
본문 눅 2:25-35
설교일시 2022-12-25
오디오파일 s20221225-2.mp3 [31167 KBytes]
목록

시므온의 시간
눅 2:25-35
(2022/12/25, 성탄절)

[그런데 마침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므로, 이스라엘이 받을 위로를 기다리고 있었고, 또 성령이 그에게 임하여 계셨다. 그는 주님께서 세우신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할 것이라는 성령의 지시를 받은 사람이었다. 그가 성령의 인도로 성전에 들어갔을 때에, 마침 아기의 부모가 율법이 정한 대로 행하고자 하여, 아기 예수를 데리고 들어왔다. 시므온이 아기를 자기 팔로 받아서 안고, 하나님을 찬양하여 말하였다. "주님, 이제 주님께서는 주님의 말씀을 따라, 이 종을 세상에서 평안히 떠나가게 해주십니다. 내 눈이 주님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주님께서 이것을 모든 백성 앞에 마련하셨으니, 이는 이방 사람들에게는 계시하시는 빛이요,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아기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시므온이 아기에 대하여 하는 이 말을 듣고서, 이상하게 여겼다. 시므온이 그들을 축복한 뒤에, 아기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 가운데 많은 사람을 넘어지게도 하고 일어서게도 하려고 세우심을 받았으며, 비방 받는 표징이 되게 하려고 세우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칼이 당신의 마음을 찌를 것입니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의 마음 속 생각들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 기다리는 사람 시므온
주님 오심을 기뻐하는 오늘, 온 세상에 평화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기를 빕니다. 분쟁과 갈등과 전쟁의 땅에, 지독한 가난과 슬픔에 내몰린 이들에게, 사람들의 눈길이 머물지 않는 곳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 군인, 경찰, 소방관, 광부, 어부, 집배원, 환경미화원, 배달 노동자, 해고 노동자, 구직자들, 장애인, 회복을 기다리는 환우들, 세상을 떠도는 난민들, 산업재해로, 어처구니없는 참사로 가족을 잃어 더욱 스산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따사로운 하늘빛이 포근하게 내리비치기를 빕니다. 오늘만큼은 이해관계를 넘어 모든 이들이 하늘의 평화를 누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귓전에 기쁜 소식이 들려옵니다. “한 아기가 우리를 위해 태어났다. 우리가 한 아들을 모셨다”(사 9:6a). 이 아기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의 임마누엘이라고도 불립니다.

크리스마스를 기뻐하는 이들에게는 한 가지 책임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이 땅에 도래하셨음을, 또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을 삶으로 입증하는 일입니다. 일상의 모든 자리 곧 가정과 일터와 사귐의 자리에 그리스도를 모시고 가야 하고, 낮은 이들을 돌보시려는 하나님의 손과 발이 되어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가 계신 곳에는 생명의 기적이 일어났고, 불화했던 사람들이 서로를 용납하고 용서하며 함께 생명을 경축했습니다. 이 기적이 우리를 통해서 나타날 때 사람들은 비로소 주님이 우리 가운데 머물고 계심을 실감하게 될 것입니다.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빛으로 오실 주님을 간절히 기다리던 사람이 있습니다. 시므온입니다. 그는 이스라엘이 받을 위로를 기다리며 일평생을 살았습니다. 그는 로마의 식민지로 전락한 조국의 비참한 운명의 목격자인 동시에 당사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쉽게 운명에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세상에 대한 꿈을 한 순간도 버릴 수 없었습니다. 그는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주님께서 세우신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할 것이라는 성령의 지시를 받은 사람”(눅 2:26)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성령의 인도로 성전에 들어갔습니다. 거기서 율법이 정한 일을 하기 위해 온 한 여인의 품에 안겨 있던 아기 예수를 봅니다. 보는 순간 전기에 감전된 듯 그는 경외심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는 조심스럽게 아기를 팔로 받아 안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노인이 아기를 안고 있는 모습은 평범하지만 매우 상징적입니다. 생명이 사위어가는 노인이 생명 덩어리인 아기를 안고 있습니다. 역사는 그렇게 이어집니다.

• 렘브란트가 들려주고 싶어한 말
17세기 플랑드르의 화가인 렘브란트는 유화, 스케치, 에칭으로 이 장면을 많이 묘사했습니다. 1699년은 렘브란트가 세상을 떠난 해입니다. 그때 그는 외로웠습니다. 아내와 아이들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그는 매우 빈곤했습니다. 그해에 그는 혼신의 힘을 다하여 두 점의 감동적인 그림을 그렸습니다. 하나는 <탕자의 귀환>이고 다른 하나는 <아기 예수를 품에 안고 있는 시므온>입니다. 이 그림들이 제게는 죽음을 예감한 렘브란트의 신앙고백처럼 보입니다. 오늘은 두 번째 그림만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림 속의 시므온은 흰 머리에 주름살이 많은 노인입니다. 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있습니다. 눈을 감아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내 눈이 주님의 구원을 보았습니다”(눅 2:30)라는 시므온의 노래를 렘브란트는 그렇게 표현했던 것입니다. 그의 코는 흥분으로 벌름거리는 것처럼 보이고, 입은 살짝 벌어져 있습니다. 떨리는 음성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찬미하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아기를 안고 있는 시므온의 두 손은 앞으로 모아져 있어 마치 아기를 두 팔 위에 올려놓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렘브란트는 빛과 어둠의 강한 대비를 통해 사물을 입체감 있게 드러내는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 기법의 대가답게, 배경은 어둡게, 시므온의 얼굴과 아기 예수의 모습은 밝게 처리합니다. 마치 아기 예수에게서 은은하게 솟아나오는 빛이 시므온의 얼굴을 비추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시므온은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는 성령의 지시를 받은 사람입니다. 그는 마침내 그리스도를 품에 안고 있습니다. 아기의 존재 자체가 자기의 마지막 시간이 다가옴을 가리키는 표징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절망이 아닌 희망입니다. “주님, 이제 주님께서는 주님의 말씀을 따라, 이 종을 세상에서 평안히 떠나가게 해주십니다”(눅 2:29). 탄생과 죽음이 슬며시 연결되고 있습니다. 시므온의 이 노래는 구유에서 태어나 십자가에서 생을 마치는 예수님의 운명을 예고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시므온의 노래는 비극적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경건한 기쁨이 깃들어 있습니다.

• 나를 둘러 당신의 옷으로 삼으소서
희망은 어둠을 모르는 빛이 아닙니다. 희망은 어둠을 뚫고 솟아오르는 빛입니다. 희망의 사람들은 어둠을 모르는 이들이 아니라 어둠 속에서도 빛을 향해 몸과 마음을 들어 올리는 사람들입니다. 시므온은 아기의 운명이 예사롭지 않음을 예감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설익은 지식인이 아니라 시대를 통찰하는 지혜자였습니다. 어느 시대나 기존 질서를 뒤흔들고 새로운 질서를 가져오려 하는 이들에게 세상이 불온의 낙인을 찍는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시므온은 요셉과 마리아에게 아기의 운명을 예고합니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 가운데 많은 사람을 넘어지게도 하고 일어서게도 하려고 세우심을 받았으며, 비방 받는 표징이 되게 하려고 세우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칼이 당신의 마음을 찌를 것입니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의 마음 속 생각들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눅 2:34b-35)

예수님과 연결되어 넘어지는 이도 있고 일어서는 이도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일찍이 “십자가의 말씀이 멸망할 자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는 사람인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고전 1:18)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주님의 가르침 혹은 삶은 거울이 되어 우리를 비춰보게 합니다.

앞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주님 오심을 진심으로 기뻐하는 이들은 그분의 오심을 삶으로 입증해야 합니다. 어둡고 음습하고 그늘진 땅에 살고 있는 이들에게 다가가 따뜻하고 은은한 빛을 비춰주어야 합니다. 눈물을 흘리고 있는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사무치는 외로움에 떠는 이들의 벗이 되어야 하고, 말을 빼앗긴 이들의 입이 되어야 하고, 불의한 현실에 저항해야 합니다. 취약한 이의 모습으로 오시는 주님은 우리와 더불어 세상을 고치고 싶어 하십니다. 이현주 목사님은 ‘나를 둘러 당신의 옷으로 삼으소서, 알몸으로 오시는 임이여’라고 노래했습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주님 오심을 기뻐한다면 지금 알몸인 혹은 취약한 우리 이웃들의 옷이 되어주어야 합니다. 고독으로 점철된 시므온의 시간은 아기 예수와 만나 영원과 연결되었습니다. 우리도 ‘우리를 위해 오신’ 주님과의 만남을 통해 이 땅에서 영원을 누릴 수 있기를 빕니다. 아멘.

등 록 날 짜 2022년 12월 25일 12시 22분 49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