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 속 희망, 임마누엘
김재흥(2026-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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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아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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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멸망은 가까이
좋으신 주님께서 주시는 위로와 평안과 새롭게 하시는 은혜가 교우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시길 빕니다. 저는 지난 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청파교우 19명과 함께 몽골 은총의 숲을 방문하고 왔습니다. 은총의 숲은 2009년부터 몽골 울란바타르 농과대학과 기독교환경운동연대와 청파교회가 함께 시작하였고 도중에 여러 교회들이 협력하여 17년 동안 몽골의 아르갈란트 지역에 조성한 숲입니다. 은총의 숲에 대해 처음 시작할 때부터 알고 있었지만 저는 이번 방문이 첫 방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출발 전부터 마음이 많이 설레었습니다. ‘2만평이 넘는 대지에 심겨진 25,000그루의 나무들이 이룬 숲은 얼마나 장관일까?’ 싶었습니다.
몽골공항에 도착해 차를 타고 1시간 반을 달려갔습니다. 여름을 맞아 모든 땅이 녹색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무는 보이지 않고 지표식물들로 표면만 녹색으로 보인 것입니다. 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녹색으로 보일 뿐 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았습니다. 모든 산이 민둥산이었습니다. 강풍과 오랜 추위와 나무가 자라기 어려운 토질로 인해 몽골의 초원과 산에는 나무가 없었습니다. 도로를 달리던 차는 흙길로 들어섰고, 우리 모임을 인도하시던 기독교환경운동연대의 이진형 목사님은 “은총의 숲에 다 왔습니다.”라고 하셨는데, 눈앞에는 정원에 가까운 작은 숲이 있었습니다. 은총의 숲은 너무 작아 보였습니다. ‘몽골이 정말 나무가 자라기 힘든 곳이구나’라는 생각과 더불어 ‘17년간의 인간의 노력이라는 것이 이렇게 미약한 것인가’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은총의 숲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하얀 호수’를 방문했습니다. 풍광이 아름답고 몽골 사람들이 중요하게 여겨 노래로 만들어 부를 정도로 그 지역의 유서 깊은 호수였습니다. 그런데 도착해서 보니 호수에 물이 별로 없었습니다. 이 목사님의 말씀에 따르면 가물었던 작년과 재작년에는 아예 호수의 바닥까지 말랐었다고 합니다. 몽골은 산업화 이전 대비 연평균기온이 2.5도에서 3도가 상승했습니다. 작년에 지구 전체의 평균온도가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가 오른 것에 비하면 몽골은 거의 그 두 배가 오른 것입니다. 몽골은 내륙국가이며 건조한 초원과 사막이 많습니다. 이런 조건 위에 지구온난화가 더해지면서 다른 지역보다 빠르게 기온이 상승하고 있습니다.
몽골은 전 국토의 70~80%가 초원입니다. 그런데 그 초원의 목초 생산성이 이전에 비해 절반정도 감소했습니다. 호수와 강과 습지가 마르니 풀이 마르고 풀이 마르니 가축들이 말라 죽어가고 있습니다. 최근 10년 사이에 4,500만 마리의 가축이 폐사했다고 합니다. 가축들이 죽으니 오랫동안 유목생활을 해온 몽골 사람들이 목초지를 버리고 수도인 울란바타르로 몰려 들어 도시빈민으로 살고 있습니다. 울란바타르의 인구 집중현상은 심각합니다. 전 몽골인의 절반이 살고 있습니다. 기온이 급격하게 오르고, 그로 인해 생태계가 파괴되고, 또 그로 인해 인간다운 삶이 무너진 몽골. 지금 몽골의 모습은 머지않아 인류 전체가 맞게 될 미래의 모습입니다. 멸망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가까이 와 있습니다.
2. 임마누엘의 복음서, 마태복음
많은 성서학자는 마태복음을 ‘임마누엘의 복음서’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의 첫 장인 1:23의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니,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할 것이다.” 이는 본디 이사야서 7:14에서 나온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마태는 이사야서에 기록되지 않은 임마누엘의 뜻을 우리에게 알려주었습니다.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뜻이다.’ 이 말씀은 앞으로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 되어주실 것을 예고한 것입니다. 마태복음의 마지막 절인 28:20을 읽어보겠습니다. “보아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 이는 생전에도 우리와 함께하시던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이후에도, 부활하신 이후에도 우리와 함께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곧, 마태복음은 임마누엘로 시작해서 임마누엘로 끝나는 임마누엘의 복음서인 것입니다.
그런데 시작과 끝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마태복음을 읽다 보면 우리는 우리와 함께하시는 예수님에 대한 말씀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아픈 사람들과 함께하셨습니다. 마태복음 곳곳에는 예수님께서 아픈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의 병을 고쳐주신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죄인들과도 함께하셨습니다. 마태복음 9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죄인이라고 손가락질 받던 세리 마태를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그런 예수님을 보면서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라고 비난했습니다. 그런 말을 들을 정도로 예수님은 죄인과 함께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방인과도 함께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방인 백부장의 믿음을 가장 큰 믿음이라 칭찬하셨고(8:10) 가나안 여인의 믿음도 귀하게 여겨주셨습니다.(15:28) 곧 예수님은 처음과 끝뿐 아니라 생애 전체가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특별히 마음 둘 곳 없던 연약한 자들과 함께하시는 임마누엘이셨습니다.
그런데 왜 마태는 예수님의 생애를 ‘임마누엘’에 초점을 맞추어 소개했을까요? 마태가 처했던 역사적 상황이 가장 임마누엘에서 거리가 먼 상황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마태 공동체가 처한 상황은 도저히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느낄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성서학자들은 마태복음의 저작시기를 주후 80~90년경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보다 조금 전인 주후 70년에 로마의 장군 티투스에 의해 예루살렘성과 성전은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성전이 무너진 사건은 유대인들에게 있어 나라가 멸망한 것보다 더한 충격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성전은 단순히 하나님을 예배하는 공간이 아니라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공간,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성전이 무너지자 유대인들은 희생제사를 드릴 수 없어져서 제사 중심의 종교를 경전 중심의 종교로 바꾸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유대교는 예수를 메시아로 고백하는 유대기독교인들을 이단으로 정죄하고 유대교에서 축출했습니다.
곧 그 당시 유대 기독교인들의 상황은 이중적 멸망의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외세인 로마에 의해 국가와 성전이 무너지고 동족인 유대인들로부터도 추방을 당했습니다. 국가라는 보호막과 민족공동체라는 보호막이 동시에 사라졌습니다. 유대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신 것이 아닌가?’, ‘홀로 남은 우리가 거대한 로마와 유대교에 맞서 무엇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라며 탄식했습니다. 마태는 그런 질문에 대해 이렇게 말해 준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전에만 계신 분이 아니시다. 예수님이 바로 우리의 새로운 성전이시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새로운 성전이요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항상 함께하신다.’
3. 멸망 속 희망, 임마누엘
‘임마누엘의 복음서’인 마태복음의 절정은 25장입니다. 마태복음 25장은 임마누엘에 담긴 참된 의미가 무엇인지, 우리가 어떻게 일상의 자리에서 임마누엘의 주님을 만날 수 있는지를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5장에는 여러 사람이 등장합니다. 먹을 것이 없는 사람, 마실 것이 없는 사람, 거할 곳이 없는 사람, 입을 것이 없는 사람 등. 그 사람들의 공통점은 결핍과 결여의 상황에 처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결핍과 결여의 상황을 멸망에 가까운 상황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습니다. 왜냐하면 먹을 것, 마실 것, 거할 곳, 입을 것이 없는 상태가 지속되면 그는 죽기 때문입니다. 멸망하기 때문입니다. 로마와 유대교가 주류를 형성하던 그 시대에 유대 기독교인들은 소수자였습니다. 생존의 위협을 받았고 삶에 필수적인 의식주조차 해결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들은 죽음과 멸망을 직면하고 있었습니다. 그 멸망을 피하는 방법은 딱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그렇게 해 주셨듯이 어렵고 힘들어도 서로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어 주는 것, 서로가 혼자가 아님을 일깨워주는 것, 서로에게 임마누엘이 되어주는 것뿐이었습니다.
몽골 은총의 숲의 현지 책임자는 침메드 씨입니다. 울란바타르 농과대학 교수로 은총의 숲을 처음으로 계획하셨던 최재명 교수님의 제자입니다. 침메드 씨는 2009년부터 지금까지 최 교수님을 도와 은총의 숲을 조성하고 관리해온 일꾼입니다. 아무것도 없던 맨땅을 나무 심기 좋은 토질로 바꾸고 몇 년간 묘목을 키우고 수많은 실패를 거쳐 은총의 숲을 만든 실질적 주역 중 한 명입니다. 현재 최 교수님이 은퇴하신 상황에서 침메드 씨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습니다. 은총의 숲을 떠나오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잠시 몽골의 현실을 둘러보고 돌아가는 우리의 마음도 이렇게 막막한데 이 땅에서 평생을 살아가는 침메드 씨의 마음은 얼마나 막막할까? 빠르게 황폐화 되어가는 고국의 땅을 바라보는 그의 마음은 어떨까?’ 그러면서 침메드 씨에게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우리가 당신과 함께하고 있다’라는 우리의 마음이 전달되었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그런 마음은 한두 번의 방문으로 전달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청파교회가 좀 더 자주 방문해야겠다’라는 다짐을 했습니다.
은총의 숲 일정 첫날 저녁이었습니다. 우리가 탄 버스가 도로를 벗어나 흙길에 올라섰을 때 서쪽 하늘에 크고 선명한 무지개가 떴습니다.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고 잠시 버스에서 내려 무지개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본 무지개 중 가장 무지개다운 무지개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멸망을 향해 미친 듯이 치닫고 있습니다. 기후재앙으로 인류가 멸망해가고 있는데도 전쟁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십시오. 우리 하나님은 그런 인간들을 향해서 계속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희를 멸망하게 그냥 두지 않을 것이다. 내가 너희와 함께하겠다. 내가 너희를 구원하겠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멸망의 상황에 놓인 이에게 임마누엘이 되어 주는 것은 하나님만의 일이 아닙니다. 우리의 일이기도 합니다. 임마누엘의 하나님으로 인해 멸망 속에서도 희망을 체험한 우리가 멸망의 상황에 처한 이들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혼자가 아님을 일깨워줄 때 우리는 진정한 임마누엘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귀하고 아름다운 일을 함께 이루어가는 청파교회 교우들과 이 시대 믿음의 백성이 될 수 있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