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무엇이기에
김재흥(2026-11-01)
듣기
주 우리 하나님, 주님의 이름이 온 땅에서 어찌 그리 위엄이 넘치는지요? 저 하늘 높이까지 주님의 위엄 가득합니다. 어린이와 젖먹이들까지도 그 입술로 주님의 위엄을 찬양합니다. 주님께서는 원수와 복수하는 무리를 꺾으시고, 주님께 맞서는 자들을 막아 낼 튼튼한 요새를 세우셨습니다. 주님께서 손수 만드신 저 큰 하늘과 주님께서 친히 달아 놓으신 저 달과 별들을 내가 봅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이렇게까지 생각하여 주시며, 사람의 아들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이렇게까지 돌보아 주십니까? 주님께서는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그에게 존귀하고 영화로운 왕관을 씌워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손수 지으신 만물을 다스리게 하시고, 모든 것을 그의 발 아래에 두셨습니다. 크고 작은 온갖 집짐승과 들짐승까지도, 하늘을 나는 새들과 바다에서 놀고 있는 물고기와 물길 따라 움직이는 모든 것을, 사람이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주 우리의 하나님, 주님의 이름이 온 땅에서 어찌 그리 위엄이 넘치는지요?
-------
1. 재난의 도미노와 우울과 불안
좋으신 주님께서 주시는 위로와 평안과 새롭게 하시는 은혜가 교우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시길 빕니다. 지난 10월 29일은 이태원 참사 4주기였습니다. 갑작스런 참사로 희생되신 160분의 영혼과 생때같은 자식을 잃고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 속에서 살아가는 유족들 위에 주님의 위로가 함께하시기를 빕니다. 그리고 부디 우리사회가 그런 재난이 반복되지 않는 사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세계는 충분히 피할 수 있고 겪지 않을 수 있는 재난들을 끝없이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전쟁은 어쩔 수 없는 재난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재난입니다. 중동 전쟁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그 지역과 당사국에만 국한된 재난이 아니라 전 세계적 재난이 되었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유가와 물가가 상승해 수많은 나라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소위 전통적인 선진국들에서조차 생활고로 인한 시위와 약탈이 빈번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오랜 전쟁으로 경제가 무너지자 사람들의 마음도 무너지고 있습니다. 11개국의 오천여 명을 대상으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정신건강에 미친 영향을 조사한 연구가 있습니다. 이 연구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가장 큰 정신적 고통을 겪었고, 그다음으로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나라들의 국민들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지난 주중에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핀란드에서 흥미로운 뉴스가 있었습니다. 핀란드 공영방송이 어미 개와 갓 태어난 여섯 마리 강아지의 모습을 24시간 생중계하고 있는데, 이 영상이 큰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합니다. 전쟁과 경제적 어려움이 이어지는 가운데 사람들은 이 작고 평화로운 생명들의 모습을 보며 잠시나마 위로와 안정을 얻는다고 합니다.
도미노 같습니다. 국가 간 관계가 깨어지니 전쟁이 일어나고, 전쟁이 일어나니 경제가 무너지고, 경제가 무너지니 사람들의 마음도 무너지는 도미노. 우리나라도 이미 그 도미노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최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2021~2025년)를 보면 우울증과 불안장애 환자가 계속 증가하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 5년 사이 10대와 9세 이하 어린이 환자의 증가율이 두드러졌습니다. 불쌍합니다. 세상을 살아온 날이 얼마 되지도 않은 그 어린 아이들이 이 세상을 우울하고 불안하게 느끼며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청년들의 지수도 늘었고, 노년층의 지수도 이전보다 증가했습니다. 산전수전 다 겪으며 살아오신 어르신들에게도 지금 이 사회는 살기 힘든 사회인 것입니다. 아이들, 청년들, 어르신들 다 불쌍합니다.
2. 불안과 우울과 암담함 속에서도 경탄과 감사를
오늘은 시편 8편의 말씀을 묵상해보겠습니다. 이 시편의 저자는 다윗으로 알려져 있지만 꼭 다윗이 지은 시편으로 보기보다는 다윗의 삶을 대입해 묵상하면 더욱 좋은 시편으로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3절과 4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주님께서 손수 만드신 저 큰 하늘과 주님께서 친히 달아 놓으신 저 달과 별들을 봅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이렇게까지 생각하여 주시며, 사람의 아들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이렇게까지 돌보아 주십니까?” 이 구절은 한밤 중 사자와 곰이 도사리는 들판에서 양을 치던 다윗이 밤하늘을 가득 수놓은 별을 보며 자신을 돌보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와 비슷하게 다윗이 사울과 압살롬에게 쫓길 때 광야와 동굴을 떠돌던 어느 날 밤하늘에 뜬 달과 별을 보며 큰 고통 속에서도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을 상상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리고 2절에 “어린이와 젖먹이들까지도 그 입술로 주님의 위엄을 찬양합니다.”라는 구절은 블레셋의 거인 장수 골리앗에 용감하게 맞섰던 어린 장수 다윗의 모습을 연상시킵니다.
시편 8편 속에는 그런 상황이 전혀 묘사되어 있지 않지만, 다윗의 삶의 스토리와 시편 8편에 나오는 장면들을 연결지어보면 그런 모습들이 저절로 상상이 됩니다. 어찌 보면 다윗이 처한 상황은 불안과 우울과 암담함의 연속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런 상황 속에서 끝없이 펼쳐진 밤하늘과 그곳에 뜬 달과 별을 봅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주 우리 하나님, 주님의 이름이 온 땅에서 어찌 그리 위엄이 넘치시는지요?”(1절과 9절)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이렇게까지 생각하여 주시며, 사람의 아들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이렇게까지 돌보아 주십니까?”(4절) 경탄과 감사입니다. 다윗이 처한 상황과 그의 입에서 나온 고백 사이에는 곧바로 이어지지 않는 간극이 있습니다.
어떻게 다윗은 불안과 우울과 암담함이 가득한 상황 속에서도 경탄하고 감사할 수 있었을까요? 창세기 15장 말씀이 떠오릅니다. 많은 자손과 땅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아 아브라함은 낙심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장막 밖으로 불러내어 밤하늘의 별을 보게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다시 한 번 약속하셨습니다. “너의 자손이 저 별처럼 많아질 것이다.” 오래토록 지켜지지 않아 믿을 수 없는 약속이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아브라함의 반응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브람이 주님을 믿으니.”(창15:6) 아브라함은 믿을 수 없는 약속을 다시 한 번 믿은 것입니다. 믿음은 우울과 불안과 암담함을 단번에 없애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그런 우울과 불안과 암담함이 내 삶의 전부가 되지 않게 합니다. 내가 처한 현실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고, 그 하나님께서 여전히 나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붙들고 다시 가야 할 길을 걸어가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불안과 우울과 암담함 속에서도 때로 경탄하고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길이 아브라함이 걸어간 길이며, 다윗이 걸어간 길이며,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입니다.
3. 사람이 무엇이기에
여러분 곧 오는 11월 18일이 무슨 날인지 아십니까? 천문학 역사에 있어 아주 의미 있는 날입니다. 1977년에 우주로 발사된 보이저 1호가 1광일 거리에 도달하는 날입니다. 1광일은 빛이 하루 동안 가는 거리를 말합니다. 거의 50년을 날아갔는데 1광년도 아니고 1광일을 날아갔다고 하니 너무 적게 느껴지지요? 우주가 그만큼 넓은 것입니다. 보이저 1호는 인류가 발사한 탐사선 중 가장 멀리 날아가고 있는 탐사선입니다. 보이저 1호가 한 수많은 일 중 하나는 태양계 밖을 향해 날아가다가 카메라를 뒤로 돌려 태양계에 속한 여섯 행성의 가족사진을 찍은 것입니다. 그 사진을 보면 지구는 어두운 우주 속에 보일 듯 말 듯한 점으로 떠 있습니다. 세계적인 천문학자인 칼 세이건은 그 먼지 같이 작은 지구를 보면서 ‘창백한 푸른 점’이라고 말했습니다. 칼 세이건은 그의 책 <창백한 푸른 점>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 점을 보십시오. 이것은 바로 여기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고향이자,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모든 이들, 당신이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 당신이 들어봤을 모든 인류가 바로 이 곳에서 대대손손 살아가고 있습니다. (중략) 그 수많은 장군과 황제들이 이 점의 극히 일부를 잠시 차지하려고 흘렸던 그 수많은 피의 강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 작은 점의 한 구석에 살던 사람들이 다른 구석에 살던 사람들에게 저지른 그 수많은 잔혹 행위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의 오해는 얼마나 잦았으며, 서로를 죽이려는 갈망은 얼마나 격렬했으며, 그 증오는 얼마나 깊었습니까? 우리의 만용, 우리의 자만심, 그리고 우리가 우주에서 특별한 지위를 누리고 있다는 착각은 이 옅은 빛을 띤 점에 의해 도전받고 있습니다. 우리 행성은 사방을 둘러싼 거대한 우주의 어둠 속에 갇힌 외로운 하나의 얼룩에 불과합니다. (재번역. 칼 세이건, 『창백한 푸른 점』, 사이언스북스, p26-27)
창백한 푸른 점 사진은 인간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있습니다. 작디작은 먼지입니다. 거대한 우주에 비하면 지구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입니까? 칼 세이건의 표현처럼 우리는 창백한 푸른 점 위에 살아가는 작디작은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시편 8편은 바로 그 먼지 같은 인간을 향해 놀라운 질문을 던집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이렇게까지 생각하여 주시며, 사람의 아들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이렇게까지 돌보아 주십니까?” 정말 왜 그 크신 하나님께서는 이 작디작은 먼지 같은 인간을 그렇게까지 생각하시고 돌보아 주시는 것일까요? 마치 칼 세이건은 그 시편 8편의 질문에 답이라도 하려는 듯 창백한 푸른 점에 대해 설명하다가 말미에 이런 말도 했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더 배려해야 하고, 우리가 아는 유일한 삶의 터전인 저 창백한 푸른 점을 아끼고 보존해야 합니다.” 하나님도 칼 세이건의 답을 보시고는 “맞다. 그게 내가 원하는 답이다.”라고 하실 것 같습니다. “내가 너희를 아끼고 돌보아 주듯이 너희도 서로 아끼고 돌보아 주며 살아라.”
보이저 1호는 발전기의 전력이 점점 줄어들고 있어, 앞으로 장비들이 하나둘 꺼질 것입니다. 머지않아 지구와의 교신도 멈추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보이저 1호는 이미 수많은 일을 이루어냈습니다. 알아주는 사람 하나 없어도 묵묵히 자신이 가야 할 길을 달려갔습니다. 보이저 1호가 날아간 만큼 우리는 새로운 우주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만큼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만드신 우주가 얼마나 크고 아름답고 놀라운 지를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우리를 둘러싼 어둠이 여전하기에 우리는 우울해하고 불안해하고 암담해하며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보이저 1호가 그랬던 것처럼 함께 살아가는 이들과 뭇 생명에게 하나님이 지으신 이 세계가 얼마나 크고 놀랍고 아름다운 곳인지 깨닫게 해주며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 방법은 하나님께서 먼지 같은 우리를 귀히 여겨주시고 돌보아주신 것처럼 서로를 귀히 여기며 돌보아 주는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그렇게 살아갈 수 있게 된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지으신 이 세상을 함께 경탄하며 하나님께 감사 찬양을 드리게 될 것이며, 먼지이지만 먼지로 끝나는 인생이 아니라 서로에게 별과 빛이 되어 주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그 귀하고 아름다운 일을 함께 이루어가는 청파 교우들과 믿음의 백성이 되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