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위의 기도
김재흥(2026-11-08)
듣기
예수께서 여리고에 들어가 지나가고 계셨다. 삭개오라고 하는 사람이 거기에 있었다. 그는 세관장이고, 부자였다. 삭개오는 예수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려고 애썼으나, 무리에게 가려서, 예수를 볼 수 없었다. 그가 키가 작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예수를 보려고 앞서 달려가서, 뽕나무에 올라갔다. 예수께서 거기를 지나가실 것이기 때문이었다.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러서 쳐다보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삭개오야, 어서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서 묵어야 하겠다." 그러자 삭개오는 얼른 내려와서, 기뻐하면서 예수를 모셔 들였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서, 모두 수군거리며 말하였다. "그가 죄인의 집에 묵으려고 들어갔다." 삭개오가 일어서서 주님께 말하였다. "주님, 보십시오.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겠습니다. 또 내가 누구에게서 강제로 빼앗은 것이 있으면, 네 배로 하여 갚아 주겠습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인자는 잃은 것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
1. 요동치는 세상과 기도의 계절
좋으신 주님께서 주시는 위로와 평안과 새롭게 하시는 은혜가 교우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시길 빕니다. 입동이라 그런지 날이 추워졌습니다. 이번 겨울은 슈퍼 엘니뇨의 영향으로 평년보다 기온이 높고 포근한 겨울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북극의 강력한 찬 공기가 일시적으로 내려와 기습적인 한파를 일으켜 기온 변화가 클 것이라고 합니다. 대비를 잘해 모두 건강히 겨울을 나면 좋겠습니다. 기온 변화만 극심한 것이 아니라 국제 정세도 급변하고 있습니다. 지난 10월 말에 이스라엘에서 총선이 있었습니다. 네타냐후의 여당이 가장 많은 의석을 얻었지만 과반을 확보하지는 못했습니다. 야당 역시 과반을 얻지 못해 연합정부 구성을 위한 협상이 진행 중입니다. 어느 당이 연합정부를 구성하느냐에 따라 중동의 상황이 바뀔 것입니다. 지난 주중에는 미국에서도 중간선거가 있었습니다. 상원과 하원에서 모두 야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주지사 선거에서도 야당에서 많은 주지사가 당선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대통령은 입법과 예산에 대한 권한은 상당히 줄어들 것입니다. 그러나 외교와 통상, 군사 분야의 권한은 여전히 행사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과 의회 사이의 힘겨루기가 어떻게 진행되느냐에 따라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큰 영향을 받게 될 것입니다.
국제 정세는 크게 요동치고, 그래서 우리를 불안하게 하지만, 요즘 가을 풍경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인터넷 포털뉴스에는 단풍명소 사진이 계속 올라옵니다. 유튜브에도 단풍 영상이 가득합니다. ‘서울 근처 가을나들이 명소’, ‘지금이 절정입니다’, ‘11월에 꼭 가봐야 할 단풍 명소 9곳’ 등등. 그런데 가을은 단풍을 즐기기에도 좋은 계절이지만, 기도에 집중하기에도 좋은 계절입니다. 물론 기도는 계절을 타지는 않지요. 우리는 늘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그러나 유난히 가을은 기도하기에 좋은 계절입니다. 붉게, 노랗게, 아름답게 물들었다 떨어지는 낙엽과 두 장밖에 남지 않은 달력은 우리에게 인생의 유한함과 소멸에 대해서 생각하게 합니다. 그런 이유 때문일까요? 기독교 신앙이 없는 사람들도 가을이면 김현승의 <가을의 기도>를 많이 떠올리게 됩니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중략)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 같이.
이 가을 우리도 시인처럼 깊은 기도의 자리에 다다르길 바랍니다.
2. 세리장 삭개오 나무 위로 올라가다
여리고 마을에 ‘삭개오’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성경을 보면 삭개오에게는 두 가지의 특징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신체적 특징으로 키가 작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직업적 특징으로 세리장이었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 세리장은 아무나 오를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세리는 이스라엘의 공무원이 아니라 로마를 위하여 이스라엘 사람들로부터 세금을 거두어들이는 사람이었습니다. 세리는 로마 군인이나 무장한 사람을 대동하고 세금을 거두어들였고, 로마가 정한 세금 이상의 금액을 징수해 그 차액을 착복했습니다. 그것을 로마가 눈감아 주었지요. 그런데 삭개오는 평범한 세리가 아니라 세리장이었고, 그것도 교역의 요충지였던 여리고의 세리장이었기에 꽤 많은 재산을 축적했을 것입니다.
여리고 마을 사람들은 그런 삭개오를 어떻게 대했을까요? 성경 말씀을 보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여리고 마을에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삭개오는 예수님을 보기 위해 길가로 나갔지만 예수님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왜 볼 수가 없었습니까? 성경은 ‘그가 키가 작기 때문이었다.(3절)’라고 했지만 그것은 절반만 맞는 이야기이죠. 삭개오가 예수님을 볼 수 없었던 더 큰 이유는 사람들이 그에게 자리를 내어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키가 작았다해도 사람들이 그에게 앞자리를 양보해 주었다면 그는 충분히 예수님의 얼굴을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예수님께서 삭개오의 집에 들어가시자 여리고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가 죄인의 집에 묵으려고 들어갔다.(7절)” 여리고 사람들에게 삭개오는 ‘죄인’이었던 것입니다. 로마를 등에 업고 자기들의 피를 빠는 삭개오를 증오했던 여리고 마을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합니다. 그 옆에 군인이 있을 때는 어쩔 수 없이 삭개오에게 복종하는 듯했지만 옆에 군인이 없을 때는 무시하고 멸시했던 것입니다. 그런 여리고 사람들의 모습이 이해가 되면서도 예수님의 얼굴이라도 한 번 보려고 길거리로 나왔다가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던 삭개오가 불쌍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가장 놀라운 장면은 사람들에게 밀려나 예수님의 얼굴을 볼 수 없었던 삭개오가 그냥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예수님의 얼굴을 보기 위해 뽕나무 위로 올라간 장면입니다. 삭개오의 이름 뜻은 ‘순결한 자’, ‘의로운 자’였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를 ‘불결한 자’와 ‘불의한 자’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삭개오는 유대인이었지만 유대가 아니라 로마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자아는 깨어진 자아였습니다. 자기가 자기답지 못했던 것입니다. 내가 나답지 못할 때 우리는 아픔을 느낍니다. 그리고 저 속 깊은 곳에서는 본래 자기의 모습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열망이 커지지요. 영화 <박하사탕>이 생각납니다. 주인공은 자기가 순수했던 모습에서 너무 멀어져 있음을 아프게 깨닫고 다시 순수했던 청년시절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그 길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끝내 철길에 올라가 달려오는 기차를 바라보며 ‘나 돌아갈래’라고 외쳤지요. 그런 순수한 모습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열망이 삭개오로 하여금 뽕나무 위로 올라가게 했을 것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나무 위로 올라가는 순간 삭개오에게 세리장이라는 직함이나 사람들의 웅성거림도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3. 나무 위의 기도
뽕나무 가지 위에서 이제나 저제나 예수님이 오시기를 간절히 기다리던 삭개오의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커다란 나뭇가지에 매달려 자신에게 변화가 일어나길 간절히 기다리는 작은 사람. 그 모습은 학배기를 닮았습니다. 학배기는 잠자리의 유충으로 바퀴벌레 비슷하게 생겼으며 수중생활을 합니다. 그러다가 때가 되면 물 위로 올라와 풀줄기나 나뭇가지에 매달립니다. 그리고 햇볕과 바람을 맞으며 허물을 벗고 마침내 잠자리가 됩니다. 부유하였지만 사람들에게 죄인과 벌레 취급을 받으며 살았던 삭개오, 그 삭개오가 나무 위에 올라가 예수님을 기다리던 시간이 삭개오에게는 간절한 기도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올바른 기도는 정화와 변화를 목적으로 한다고 말씀드려 왔습니다. 우리는 ‘기도’라고하면 ‘나의 소원을 비는 것’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간구’로 기도의 한 종류입니다. 우리는 어렵고 힘들 때 얼마든지 하나님께 간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는 그런 간구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우리의 기도가 계속 ‘간구’ 하나여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신앙이 자라지 않습니다. 기도의 본질적인 목적은 정화와 변화를 통해 우리가 진정한 하나님의 형상, 곧 하나님 자녀다운 모습을 회복하는 데 있습니다.
뽕나무 아래를 지나가시던 예수님은 삭개오를 알아보셨습니다. 삭개오 속에 있던 순수하고 의로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자 하는 정화와 변화의 열망을 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삭개오를 보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삭개오야, 어서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서 묵어야 하겠다.” 이스라엘에서 누군가의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잔다는 것은 ‘그는 나와 같은 사람이다’라는 뜻이 담겨 있는 행위였습니다. 예수님의 방문은 삭개오에게 커다란 사랑이었고 은혜였고 영광이었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께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부정하게 모은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것이며, 강제로 빼앗은 것은 네 배로 갚아주겠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변화입니까?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가 햇볕과 바람처럼 삭개오에게 닿았고, 삭개오는 그로 인해 정화되고 변화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삭개오의 아름다운 변화를 인증이라도 하시듯이 사람들이 듣는 가운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죄인이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었습니다. 학배기 같던 삭개오가 멋진 잠자리로 변화된 것입니다.
만물을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가을볕이 은총처럼 내리는 요즘입니다. 그 볕을 맞고 나뭇잎은 붉게 타오르고, 산야의 곡식과 열매들은 자기답게 익어갑니다. 주님은 그 은총의 볕을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내려주고 계십니다. 우리도 삭개오처럼 나무 위로 올라가야 합니다. 사회가 준 직함, 사람들의 평가를 뒤로하고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나도 모르는 사이 인생과 역사의 수레바퀴에 치여 뒤틀어진 우리의 모습에 아파하고, 우리의 본모습,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 자녀의 모습을 회복하기를 열망해야 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삭개오에게 사랑과 은총의 볕을 비추어 주심으로 학배기 같았던 삭개오를 멋진 잠자리로 변화시켜 주셨던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형상답게 살고 싶지만 자기 힘만으로는 상황을 변화시킬 수 없는 이들에게 다가가 주님의 사랑과 은총의 볕이 되어 주어 그들로 하나님의 형상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에게 볕이 되어 주는 것을 ‘볕 기도’라고 이름 붙여 보았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형상답게 살아가기를 기도하며, 그에게 볕과 같은 도움을 주기에 ‘볕 기도’라 이름을 붙여 본 것입니다. 지난 10월 마지막 주일에 캄보디아 이주 노동자들의 임시 숙소 마련을 위한 모금을 진행했습니다. 임시 숙소는 갑자기 해고를 당하거나, 아프거나 할 때 당장 잠잘 곳이 없기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공간이었습니다. 모금을 했는데 꼭 필요한 만큼 모금이 되었습니다. 참 감사한 일입니다. 그런 볕 기도야말로 우리로부터 도움을 받는 그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답게 변화시켜주는 동시에 우리 자신도 하나님의 형상답게 변화시켜주는 참된 기도인 것입니다. 이 세상은 이런저런 일로 요동치고 그래서 불안하지만, 우리가 계속 하나님의 형상답게 살기를 기도하고 또 서로를 위한 볕 기도를 멈추지 않는다면, 이 요동치는 불안한 세상도 그만큼 살만한 세상이 되리라 믿습니다. 그 귀한 일을 함께 이루어 가는 청파교우들과 믿음의 백성이 되길 간절히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