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드온의 힘으로
김재흥(2026-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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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천사가 아비에셀 사람 요아스의 땅 오브라에 있는 상수리나무 아래에 와서 앉았다. 그 때에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은, 미디안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포도주 틀에서 몰래 밀이삭을 타작하고 있었다. 주님의 천사가 그에게 나타나서 "힘센 장사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기드온이 그에게 되물었다. "감히 여쭙습니다만,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면, 어째서 우리가 이 모든 어려움을 겪습니까? 우리 조상이 우리에게, 주님께서 놀라운 기적을 일으키시어 우리 백성을 이집트에서 인도해 내셨다고 말하였는데, 그 모든 기적들이 다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지금은 주님께서 우리를 버리시기까지 하셔서, 우리가 미디안 사람의 손아귀에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그를 바라보시며 말씀하셨다. "너에게 있는 그 힘을 가지고 가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하여라. 내가 친히 너를 보낸다." 기드온이 주님께 아뢰었다. "감히 여쭙습니다만, 내가 어떻게 이스라엘을 구할 수 있습니까? 보시는 바와 같이 나의 가문은 므낫세 지파 가운데서도 가장 약하고, 또 나는 아버지의 집에서도 가장 어린 사람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을 것이니, 네가 미디안 사람들을 마치 한 사람을 쳐부수듯 쳐부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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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막막한 상황
좋으신 주님께서 주시는 위로와 평안과 새롭게 하시는 은혜가 교우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시기를 빕니다. 이번 주 수요일은 밤의 길이가 낮의 길이보다 길어지기 시작하는 추분이고, 금요일은 민족의 명절 추석입니다. 이제 정말 가을입니다. 가을과 명절이 주는 기쁨 속에서 한 주간 행복하게 지내시길 빕니다.
완연한 가을날씨와 다가오는 명절은 마음에 여유를 가져다주지만, 오늘 우리가 처한 현실은 결코 여유롭지 않습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막막합니다. 세계 곳곳에서 전쟁의 불길은 더욱 크게 번지고 있습니다. 각 나라마다 차별과 배제의 정책을 앞세운 극우 정당이 득세하고 있습니다. 그로인해 나라들 간의 갈등은 더욱 커져만 갑니다. 국내 상황도 좋지 않습니다. 국민들 간에 정치적 갈등, 세대 갈등, 계층 갈등이 날로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망국의 문제라는 부동산 문제는 해결의 길이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북한과의 관계 개선은 바늘구멍만한 길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전 지구적 문제인 환경문제 역시 심각합니다. 네팔 대홍수 피해 사망자 및 실종자 수는 8,000명이 넘었는데 그런 빙하 쓰나미로 인한 피해는 앞으로 점점 늘어날 전망입니다. 해수면 또한 급격하게 상승하고 있어서 우리나라 제주도와 부산 같은 곳에서는 밀물이 가장 높이 차오르는 대조기에 인도와 도로까지 잠기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생명과 평화의 세상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직면한 문제는 태산처럼 거대합니다. 그런데 그 문제에 비하면 우리는 너무 작습니다. 그 거대한 문제들은 우리를 압도합니다. 그 문제들이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만 같습니다. ‘넌 아무것도 아니야. 네가 하는 그 작은 노력들은 아무 의미도 없어’ 그런 소리는 날이 갈수록 우리 내면속에서 더욱 크게 들려오며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2. 기드온
오늘 말씀 속에 등장하는 기드온도 그와 비슷한 무력감 속에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사사기 6장 말씀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7년 동안 이스라엘을 미디안 손에 넘기셨습니다. 미디안은 이스라엘의 남쪽에 위치한 족속으로 이스라엘을 계속 위협하던 민족이었는데 기드온 시대에 이스라엘을 자주 쳐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이 쳐들어올 때마다 동굴과 요새로 도망쳐야 했습니다. 특히 미디안 사람들은 추수철이 되면 쳐들어와 먹을 것을 하나도 남기지 않기지 않고 빼앗아갔으며 양, 소, 나귀까지 빼앗아갔습니다. 그들은 메뚜기떼처럼 쳐들어와 온 땅을 황폐하게 만들었습니다.(6:5) 그러자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께 울부짖었고 하나님은 예언자를 보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내가 너희를 종살이하던 이집트에서 이끌어내었고, 이 땅을 너희에게 주었다. 그러나 너희는 우상을 섬겼다.’ 곧 이 고난은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서 약속을 받은 백성답게 살지 못해서 찾아온 고난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언제나 그런 것 같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약속, 언약, 말씀을 지키지 못할 때 고난은 찾아옵니다.
오브라 땅에 살던 기드온은 눈치를 살피며 밀단을 지고 포도주 틀 안으로 들어갑니다. 미디안 사람들의 눈을 피해 밀을 몰래 타작하려는 것입니다. 참 비참한 광경입니다. 타작은 넓은 마당 같은 곳에서 여러 사람이 함께 흥겹게 노래를 부르며 해야 하는데 혹 미디안 사람들에게 빼앗길까봐 홀로 몰래 포도주 틀 안에 숨어 타작을 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타작을 하던 기드온은 울면서 혼잣말로 이렇게 말했는지도 모릅니다. ‘이건 아니지 않는가? 1년, 2년, 7년 동안 이렇게 살아왔는데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한단 말인가?’ 그때 천사가 나타나 기드온에게 말합니다. “힘센 장사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기드온은 이런 때가 오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천사에게 다소 공격적으로 질문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면, 어째서 우리가 이런 어려움을 겪습니까? 주님께서 우리 백성을 이집트에서 인도해 내셨다고 말했는데 그 기적들이 지금 다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신 것 아닙니까?” 그러자 주님께서 친히 기드온에게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너에게 있는 그 힘을 가지고 가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하여라. 내가 친히 너를 보낸다.”
기드온은 주님께 되물었습니다. “내가 어떻게 이스라엘을 구할 수 있습니까? 나의 가문은 므낫세 지파 가운데서도 가장 약하고, 또 나는 아버지의 집에서도 가장 어린 사람입니다.” 미디안은 기드온이 혼자의 힘으로 도저히 맞설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너에게 있는 그 힘을 가지고” 미디안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드온에게 있는 힘이 1당 100의 힘이 아니었을텐데 주님께서는 도대체 기드온의 어떤 힘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라고 말씀하셨던 것일까요?
3. 기드온의 힘으로
저는 그 힘은 다음의 두 가지였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기드온에게는 울면서라도 가야할 길을 계속 가는 힘이 있었습니다. 기드온은 포도주 틀 안에 들어가 밀 타작을 했습니다. 그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미디안 사람들에게 발각될 시 곡식을 빼앗기는 것만이 아니라 죽임을 당할 수도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그 일을 감당했습니다. 혼자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이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그 위험한 일을 감당했습니다. 기드온이 처한 현실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로 비참했지만 그렇게 비참한 상황 속에서도 기드온은 하루하루 가야할 길을 계속 걸어갔습니다. 둘째, 기드온에게는 기도할 수 없을 때에도 기도하는 힘이 있었습니다. 기드온은 하나님께 질문을 던졌습니다. “하나님은 정말 우리와 함께하십니까? 출애굽과 같은 기적이 오늘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우리를 버리신 것 아닙니까?” 저는 이것이 의심의 질문이라기보다는 기드온의 간절한 간구였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우리와 함께해 주십시오. 하나님, 다시 한 번 출애굽과 같은 기적의 은혜를 우리에게 베풀어 주십시오. 하나님, 부디 우리를 버리지 말아주십시오.” 기드온은 기적이 옛이야기가 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 같은 상황 소에서도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믿으며 기도했던 것입니다.
거대한 문제에 압도되어 우리가 한 없이 작게 느껴질 때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은 크게는 다음의 두 가지입니다. 첫째, 무력해집니다. 우리의 존재와 노력이 아무 의미 없이 느껴지기에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 꿈꾸지 않기에 기도하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 세상을 꿈꾸지 않으니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의 뜻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단순히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것을 믿는다’라는 것이기보다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완전히 무너진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심을 믿으며,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며 울면서라도 그 뜻을 매일의 삶 속에서 이루어 가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기드온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믿는 한 사람 기드온의 힘을 가지고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해내셨습니다. 한 사람이 마음에 품은 바른 믿음의 힘이 그렇게 큽니다.
제가 요즘 자주 마음속에서 되새김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예전에 소개해 드린 바가 있는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 이야기입니다. 1900년대 프랑스 프로방스가 배경입니다. 기근과 무분별한 벌목으로 산과 산에 있는 마을이 황폐해졌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떠났습니다. 그 어떤 생명도 살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곳에 들렀던 여행자는 그 마을의 샘을 찾아갔지만 바짝 말라있었습니다. 그 여행자는 하는 수 없이 계속 길을 가야만 했습니다. 그는 우연히 한 양치기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양치기는 오래 전 아들과 아내를 잃고 혼자 양을 치며 나무를 심으며 살았습니다. 그의 이름은 엘제아르 부피에였습니다. 엘제아르 부피에는 그곳의 땅이 나무가 없어서 죽어간다 생각하여 그 땅을 바꾸어보기로 마음먹고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곳곳에는 그가 심은 나무들이 작은 숲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 이후에도 엘제아르 부피에는 떡갈나무, 너도밤나무, 자작나무, 단풍나무 등을 수십 년에 걸쳐 심었습니다. 중간에 세계 대전도 있었지만 그가 가꾼 숲은 어느 새 폭이 11킬로미터가 넘는 거대한 숲이 되었습니다. 메말랐던 땅에는 냇물이 흐르고, 사람이 살 수 없던 곳이 만 명이 모여 사는 곳이 되었습니다. 엘제아르 부피에를 오랫동안 보아온 여행자 그를 이렇게 불렀습니다. ‘하나님이 내린 일꾼.’ 그 이야기 중에 요즘 제가 자주 떠올리는 대목은 엘제아르 부피에가 도토리를 골라내는 장면입니다. 엘제아르 부피에는 매일 저녁이면 자루에서 도토리를 꺼내 그중에서 좋은 도토리 100개를 골라내었습니다. 그리고는 또 다시 그 중 작거나 흠이 있는 것을 골라내 새로 100를 채웠습니다. 그렇게 정성껏 골라낸 도토리를 매일 황폐한 땅에 심은 것입니다. (장 지오노, 「나무를 심은 사람」, 두레. 17~20쪽)
생명과 평화의 세상이 오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생명과 평화의 세상을 가져다 주시기를 바랐고, 나 아닌 다른 누군가가 생명과 평화의 세상을 이루어주기를 바랐습니다. 잊고 있었습니다. 생명과 평화의 세상은 내가 생명과 평화의 씨앗을 심지 않으면 오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가 엘제아르 부피에처럼 날마다 하루에 100개의 생명과 평화의 씨앗을 심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10개의 생명과 평화의 씨앗이라도 황폐해진 우리의 마음과 함께 살아가는 이들의 마음과 세상 속에 심으며 살아갑시다. 우리가 울면서라도 생명과 평화의 씨앗을 계속해서 심어나간다면,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계속 기도한다면, 언젠가 생명과 평화의 세상이라는 열매를 기쁨으로 거두게 될 것입니다. 그 귀한 일을 함께 이루어가는 청파교우들과 믿음의 백성이 되길 간절히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