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일꾼, 느헤미야
김재흥(2025-11-16)
듣기
나도, 나의 친족도, 그리고 내 아랫사람들도, 백성에게 돈과 곡식을 꾸어 주고 있습니다. 제발, 이제부터는 백성에게서 이자 받는 것을 그만둡시다. 그러니 당신들도 밭과 포도원과 올리브 밭과 집을 오늘 당장 다 돌려주십시오. 돈과 곡식과 새 포도주와 올리브 기름을 꾸어 주고서 받는 비싼 이자도, 당장 돌려주십시오." 그들은 대답하였다. "모두 돌려주겠습니다. 그들에게서 아무것도 받지 않겠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다 하겠습니다." 나는 곧 제사장들을 불러모으고, 그 자리에서 귀족들과 관리들에게 자기들이 약속한 것을 서약하게 하였다. 나는 또 나의 주머니를 털어 보이면서 말하였다. "이 서약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이 그 집과 재산을 이렇게 다 털어 버리실 것입니다. 그런 자는 털리고 털려서, 마침내 빈털터리가 되고 말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말하자, 거기에 모인 모든 사람이 "아멘!" 하며 주님을 찬양하였다. 백성은 약속을 지켰다.
---------------
1. 희망과 위로의 일꾼
좋으신 주님께서 주시는 위로와 평안과 새롭게 하시는 은혜가 교우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시기를 빕니다. 만추입니다. 산에 단풍이 곱게 물들었습니다. 나무들은 나뭇잎을 하나둘 떨구고 있습니다. 자연은 아름답게 한 해를 마무리해가는데 우리들은 그러지 못하고 있습니다. 울산화력발전소의 붕괴사고에 자꾸 마음이 갑니다. 지난 6일 일어난 사고로 7명이 매몰되었고, 7명 모두 매몰된 채 사망했습니다. 최후 한 명은 사고 후 8일이 지난 어제서야 시신을 수습했습니다. 일을 하러 출근한 노동자 일곱 명이 퇴근하지 못하고 일터에서 죽었습니다. 그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왜 이렇게 자주 반복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일의 속도와 비용보다 안전과 사람의 목숨을 중히 여기는 사회가 되길 바랍니다.
지금 세계 여러 나라의 시선은 미국연방대법원에 몰려있습니다. 미국의 기업과 여러 주 정부는 트럼프가 세계 여러 나라에 부과한 관세 대부분이 불법이라 철회해야 한다며 소송을 걸었고, 이에 미국연방대법원이 심의에 들어간 것입니다. 올 연말이나 내년 초에 결론이 나올텐데 만약 대법원이 관세 부과가 불법이었다고 판결하면, 트럼프 정부는 그동안 거둔 관세 수입의 상당 부분을 환불해주어야 합니다. 일부에서는 그런 판결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트럼프에게는 관세를 부과할 다양한 방법들이 있기 때문에 이전처럼 자유무역의 시대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지나친 관세 부과가 불법이었다는 판결이 나와서 한 사람의 그릇된 결정으로 세계 수십억 명이 고통받는 부당한 일에 조금이라도 제동이 걸리면 좋겠습니다.
요즘 제가 계속 눈여겨보고 있는 정치인이 있습니다. 그는 트럼프와는 정반대되는 길을 가고 있는 정치인인데 지난 11월 초 뉴욕 시장선거에서 당선된 조란 맘다니입니다. 그는 정치에 입문한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2020년 뉴욕주 하원의원이 되면서 정치계에 데뷔했습니다. 이민자 가정 출신에 비기독교인이며 올해 나이 서른네 살입니다. 여러 가지로 불리한 조건의 맘다니가 50%가 넘는 높은 지지를 받으며 시장에 당선된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뉴욕은 주거비, 교통비, 식료품비 모두가 살인적입니다. 어린이 4명 중 1명은 끼니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뉴욕은 사람이 살기 어려운 도시가 되었습니다. 맘다니는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공공주택의 임대료를 동결하고, 공공버스를 무료화하고, 시립 식료품점을 세워 도매가로 식료품을 공급하겠다고 했습니다. 저소득층인 노동자와 이민자들 그리고 젊은 2,30대가 맘다니에게 표를 몰아주었습니다. 그의 선거운동 중 마음에 크게 와닿았던 것은 그와 10만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뉴욕시민들의 집을 가가호호 방문했던 것입니다. 맘다니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어려움에 대해 듣고, 공감해주고, 그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정책을 펼칠 것을 약속했습니다. 그의 정책들이 그의 말처럼 성공하는지는 지켜보아야 하겠지만, 어려운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어려움을 자기의 어려움으로 받아들이고, 그들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뭐라도 하려는 모습자체가 사람들에게 희망과 위로가 되어 주었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우리 사회 곳곳에서, 맘다니처럼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희망과 위로가 되는 일꾼들이 많이 등장하면 좋겠습니다.
2. 느헤미야
성서에 나온 많은 하나님의 일꾼들이 그렇게 살았습니다. 느헤미야도 그 중에 한 명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바벨론 포로기 때 바벨론으로 끌려가 살던 유대인의 후손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페르시아의 아닥사스다 왕의 고위관리였습니다. 그는 어느 날 유대에서 온 동포에게서 예루살렘의 형편에 대해서 듣게 되었습니다. 포로로 끌려오지 않고 예루살렘에 남은 유대동포들이 주변 족속들로부터 업신여김을 받고 있으며, 성벽은 옛날에 허물어진 채로 방치되어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느헤미야는 그 말을 전해듣고는 주저앉아서 울며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우리 이스라엘이 주님께 큰 죄를 지어 주님께서 흩어버리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다시 율법을 지키면 우리를 택한 곳으로 다시 돌아가게 하겠다고 하신 말씀을 기억해 주십시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이 비참한 상황에 놓여 있고 동포들이 고생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마음이 계속 괴로웠고, 그 깊은 괴로움은 왕 앞에 섰을 때도 얼굴을 통해 드러났습니다. 왕은 무슨 일이 있느냐 물었고, 느헤미야는 있는 그대로 말했습니다. 결국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해도 좋다는 왕의 승낙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찌 보자면, 그 길은 가지 않아도 되는 길, 아니 가지 말아야 하는 고생길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자기보다 하나님의 말씀 지키는 일과 동포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 도착한 느헤미야는 밤에 무너진 예루살렘 성을 한 바퀴 돌아보았습니다. 과연 성벽은 다 허물어져 있었고 성문은 모두 불에 탄 채로 버려져 있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책임자들을 불러모아놓고는 성벽을 다시 쌓자고 말했습니다. 드디어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지고 140여년이 지나서 재건공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성벽이 조금씩 올라가자 사마리아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이 ‘곧 다시 무너질 것이다’라며 악담을 했습니다. 어느새 성벽을 절반까지 쌓자, 사마리아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은 크게 화를 내면서 공격하려고 했습니다. 유다 사람들 반은 무기를 들고 적의 공격을 방비하였고 나머지 절반은 성을 쌓았습니다. 어느새 무너진 성벽을 다 잇게 되었습니다. 이제 문짝만 만들어 달면 되었습니다. 그러자 사마리아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은 계략을 꾸며 느헤미야를 죽이려 했고, 성벽을 쌓는 것은 느헤미야가 스스로 왕이 되려는 것이며 페르시아 왕에게 반역하는 것이라고 음해하였습니다. 느헤미야는 그런 말에 휘둘리지 않았습니다. 성벽공사를 시작한지 52일만에 모든 공정을 마쳤습니다. 공사가 끝나자 주변 적대자들의 기가 꺾였습니다. 유대 사람들은 더 이상 주변 민족의 위협을 받지 않게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성이라는 이스라엘의 하드웨어가 복구되자, 학자 에스라는 이스라엘의 소프트웨어인 율법을 유대인들에게 가르쳤습니다.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이 온전히 회복된 것입니다.
느헤미야가 진정한 하나님의 일꾼이었다는 것은 성벽재건 중간에 일어났던 일을 보면 더욱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외부의 적 때문에 안 그래도 어려운 때에 유대인들 내부에서 갈등이 생겼습니다. 예루살렘의 귀족과 관리들이 같은 동포를 돈벌이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그들이 많은 세금을 거두어 들였기에 일반 유대 백성은 토지를 저당잡혀야 했고, 어떤 이는 양식을 얻기 위해 토지를 저당잡혀야 했으며, 어떤 이는 아들딸을 종으로 팔아야 했습니다. 느헤미야는 귀족과 관리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방 사람들에게 팔려서 종이 된 동포를 애써 몸값을 치르고 데려왔는데 지금 당신들은 동포를 또 팔고 있소.” 그러면서 느헤미야 자신도 동포에게 돈과 곡식을 그냥 빌려주고 있다고, 동포에게 이자를 받지 말라고, 이미 저당 잡은 토지와 받은 이자를 다 돌려주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느헤미야는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 보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서약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이 그 집과 재산을 이렇게 다 털어버려 빈털터리가 되고 말 것입니다.” 느헤미야가 보여준 빈주머니는 이중적 의미가 있었습니다. 말 그대로 서약을 지키지 않는 자는 빈털터리 신세가 된다는 의미와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벽재건과 유다백성을 위해 자기의 욕심을 비운 사람임을 보여주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느헤미야는 페르시아가 유다로 보낸 총독으로서 당연히 받아야 했던 녹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 녹을 충당하기 위해 유다 백성이 그만큼의 세금을 더 내야했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3. 하나님의 일꾼
그런 느헤미야의 모습은 전래동화 <콩쥐팥쥐 이야기> 속에 등장한 어떤 캐릭터를 떠올리게 만듭니다. 콩쥐의 어머니가 죽자, 아버지는 계모를 들였습니다. 계모는 자신의 소생인 팥쥐를 편애하고 콩쥐를 괴롭혔습니다. 어느 날 계모는 마을 큰 잔치에 팥쥐만 데리고 가면서 콩쥐에게는 일을 잔뜩 시키고는 그 일을 다 하면 잔치에 오라고 했습니다. 그 일은 세 가지였습니다. 밑 빠진 독에 물 채우기, 곡식 한 섬 찧기, 베 짜기. 그 중 하나만도 하루에 다 할 수 없는 일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두꺼비가 나타나 깨진 독의 구멍을 막아 주어 금방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웠고, 새 떼가 나타나 곡식을 찧어주었고, 선녀가 나타나 베를 짜주었습니다. 그래서 콩쥐도 잔치에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두꺼비, 새 떼, 선녀 모두가 콩쥐에게는 하나님이 보내준 일꾼들이었을 것입니다. 그 중 두꺼비의 모습 속에서 느헤미야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 당시 유대 사람들의 상황은 밑 빠진 독과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삶의 보호막은 사라지고 노력해도 나아지는 것은 없었습니다. 두꺼비가 콩쥐를 불쌍히 여겨 자기의 온 몸으로 밑 빠진 독의 구멍을 막아 물이 차오르게 만들어준 것처럼, 느헤미야는 유대 사람들을 불쌍히 여겨 온갖 어려움과 위험과 손해를 감내하면서 무너진 성벽을 다시 세움으으로 밑 빠진 독과 같았던 유대 사람들의 삶을 다시 위로와 희망이 가득한 삶으로 바꾸어 주었습니다. 느헤미야의 이름 뜻은 ‘하나님의 위로’입니다. 하나님의 위로는 그냥 찾아오지 않습니다. 느헤미야와 같이 충직한 하나님의 일꾼을 통해 찾아옵니다.
주일 아침이면 가끔 김철수 장로님이 생각납니다. 장로님은 2019년에 돌아가셨습니다. 음식물이 쓰레기로 버려지는 것을 가슴 아프게 생각하여 주일 점심 식사 시간 때 퇴식구 앞에 서계시다가 교인들이 잔반을 남겨 오면 ‘이거 다 드신 거에요?’ 물으시고는 ‘네. 다 먹은 겁니다’하면 그 자리에서 잔반을 다 드셨습니다. 그래서 교인들이 교회에서뿐 아니라 함께 밖에서 식사할 때도 누가 음식을 남기려고 하면 ‘야, 다 먹어. 철수가 보고 있어’라는 말을 하게 만드셨지요. 그 모습은 이미 많은 분이 알고 계시지만, 김 장로님은 다른 선한 일도 많이 하셨습니다. 매 주일 아침이면 교인들이 오기 전에 교회 식당으로 내려오셔서 행주로 교인들이 식사할 모든 식탁을 깨끗하게 닦으셨습니다. 그리고 교인들 중 어려운 교인이나 단체 중 어려운 단체가 없는지 자주 물으셨고, 누가 어렵다, 어떤 단체가 어렵다 말씀드리면 항상 도와주셨습니다. 또 하나 잊지 못하는 것은 당신의 집을 자주 오픈하신 일입니다. 목회실뿐 아니라, 교회의 여러 그룹들, 청년들에게까지 당신의 집을 자주 오픈하셨고 당신 집에서 편하게 먹고 마시고 쉬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아내이신 유영남 권사님의 작업실 겸 전시실도 교회를 위해 완전히 오픈하셨습니다. 아동부, 중고등부, 청년부 수련회를 자주 그곳에서 진행했습니다. 많은 이에게 그 공간은 환대의 장소로 추억되고 있습니다. 그 공간의 이름은 심소재尋素齋입니다. 김기석 목사님이 지어드린 이름인데 찾을 심, 바탕 소, 집을 뜻하는 재, 바탕을 찾는 집입니다. 김철수 장로님이야말로 바른 바탕을 찾은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일꾼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능력과 재능과 부가 아닙니다. 바탕입니다. 사실 바탕이 전부입니다. 바탕이 바라야 다른 모든 것이 바릅니다. 바탕이 잘못되어 있으면 그에게서 나오는 모든 것이 잘못될 뿐입니다. 공자가 논어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회사후소(繪事後素). ‘그림 그리는 일은 바탕을 마련한 후에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저는 회사후소가 아니라 만사후소萬事後素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림 그리는 일만 바탕이 중요한 게 아니죠. 모든 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른 바탕을 마련하는 일입니다. 바른 바탕이란 너와 공동체와 하나님을 위해 나의 욕망과 이기심과 유익을 비우는 것입니다. 성경과 사람들은 그것을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그릇된 바탕은 그 반대입니다. 나의 욕망과 이기심과 유익을 위해 너와 공동체와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성경과 사람들은 그것을 ‘욕심’이라고 말합니다. 바른 바탕을 마련하는 방법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욕심을 비우고 사랑을 채우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청파교회 곳곳에도 바른 바탕을 갖춘 하나님의 일꾼들이 많이 있습니다. 묵묵히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랑의 수고를 아끼지 않는 분들입니다. 저는 그분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웁니다. 이제 연말입니다. 교회에서는 내년도 일꾼들을 세우게 됩니다. 곳곳에서 바른 바탕의 사람들이 더 많이 교회 일꾼들로 세워지길 소망합니다. 그래서 우리교회가 밑 빠진 독과 같은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게 더 많은 하나님의 위로를 전하는 교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 귀하고 아름다운 일을 함께 이루어가는 청파교회와 이 시대 믿음의 백성이 되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