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하시던 일 이어가기
김재흥(2026-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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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는 이 밖에도 많은 말로 증언하고, 비뚤어진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고 그들에게 권하였다. 그의 말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세례를 받았다. 이렇게 해서, 그 날에 신도의 수가 약 삼천 명이나 늘어났다.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에 몰두하며, 서로 사귀는 일과 빵을 떼는 일과 기도에 힘썼다. 모든 사람에게 두려운 마음이 생겼다. 사도들을 통하여 놀라운 일과 표징이 많이 일어났던 것이다. 믿는 사람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그들은 재산과 소유물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대로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날마다 한 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집집이 돌아가면서 빵을 떼며, 순전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모든 사람에게서 호감을 샀다. 주님께서는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여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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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청파 설립 118주년
좋으신 주님께서 주시는 위로와 평안과 새롭게 하시는 은혜가 교우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시기를 빕니다. 오늘은 청파교회설립 118주년이 되는 주일입니다. 주중에 청파교회 백년사를 다시 한 번 훑어보았습니다. 1908년 나라의 운명이 저물어가던 때 복음의 밝은 빛으로 어두운 시대를 밝히려던 이들이 시작한 교회가 청파교회였습니다. 식민지배와 전쟁이라는 지난한 고통과 혼란의 시대 속에서도 주님의 몸되신 교회를 위해서 애쓰고 수고한 분들에게 새삼 마음 깊이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함께 신앙생활했지만 지금은 돌아가신 박정오 목사님과 장로님들과 권사님들의 이름과 사진을 보니 그리움이 마음에 가득 차올랐습니다. 오늘의 청파교회는 주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뿐 아니라 많은 이들의 헌신 위에 서 있습니다. 타고르는 생일을 ‘내가 이 세상에 온 이유를 다시 묻는 날’이라고 말했는데, 교회 생일을 맞아 우리교회의 존재의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2. 자기중심주의와 잘못된 표지판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전쟁의 시대입니다. 수십 개국이 전쟁 중입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미국과 이란. 작년에는 태국과 캄보디아, 인도와 파키스탄이 전쟁을 벌였습니다. 오래토록 내전 중인 나라들도 많습니다. 그리고 지금 당장 전쟁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나라들도 많습니다. 계속 산불처럼 번져가는 전쟁을 보면서 ‘이것은 전쟁을 하는 몇몇 나라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 우리 시대의 문제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 반복해서 보도되는 뉴스가 있습니다. 학교 운동회 관련 뉴스입니다. 학교 주변 주택단지에서 소음 민원을 제기해 운동회를 하지 못하는 학교가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학교는 운동회를 열기 며칠 전부터 주민들에게 죄송하다는 안내문을 게시하고 운동회를 진행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저는 전쟁이 늘어가는 현상과 과하게 민원을 제기하는 모습에는 유사점이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쟁과 소음민원은 형태적으로 아주 다르지만 마음의 시작점은 유사합니다. 자기중심주의. 나의 권리는 너의 권리보다 크다는 생각, 나의 권리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는 얼마든지 너의 권리와 자유를 무시할 수 있다는 생각은 같습니다.
우리는 바야흐로 자기중심주의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지금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은 미국과 러시아 중심으로 시작된 신냉전주의의 영향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신냉전주의의 뿌리가 자국중심주의, 곧 자기중심주의입니다. 자기중심주의라는 거대하고도 거센 물결은 우리의 신앙과 교회 안에도 그대로 들어왔습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욕망을 하나님의 뜻으로 여기고, 교회의 확장을 하나님 나라의 확장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교인과 교회가 상식과 사회법에서 어긋난 일들을 번번이 행하며 사회로부터 욕을 먹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사는 동네의 공원이 최근에 공원정비를 했습니다. 길을 보수하고 황토 길도 만들고 나무데크 계단도 새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공원 한쪽에 세운 표지판이 잘못되었습니다. 표지가 가리키는 방향과 표지판에 써 있는 장소의 이름이 맞지 않았습니다. 오른쪽 왼쪽이 반대로 달렸습니다. 그 표지를 볼 때마다 마음이 무척 불편했는데, 뭔가 어디서 자주 느꼈던 불편함이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 느낌은 오늘의 교회들을 볼 때 느꼈던 불편함이었습니다. 교회가 ‘복음’ ‘예수’ ‘하나님’이라고 가리키는 방향이 실상은 그 반대인 경우가 적지 않은 것입니다. 교회가 예수라는 본질을 꼭 붙잡지 못하고 자기중심주의라는 거대한 시류에 휩쓸린 결과입니다.
3. 자기중심주의에 교회가 맞서는 방법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신 이후 제자들만 예루살렘에 남게 되었습니다.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던 제자들 위로 성령이 강림했습니다. 제자들은 다락방에만 있지 않고 밖으로 나가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베드로는 사람들에게 이런 말도 했습니다. “비뚤어진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베드로는 자기가 살던 시대를 비뚤어진 시대로 보았습니다.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시대. 자신의 판단과 이익을 선의 자리에 놓고 그와 반대되는 것은 모두 악으로 규정해 제거하던 시대. 그 시대 또한 자기중심주의의 시대였던 것입니다. 비뚤어졌다는 말과 자기를 중심으로 삼았다는 말은 같은 말입니다. 자기는 옳은 중심이 아닙니다. 비뚤어진 중심입니다. 베드로와 제자들과 초대교회 사람들이 비뚤어진 세대와 자기중심주의 시대에 맞서 구원의 공동체인 교회를 만들었던 방법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첫 번째 방법은 43절에 ‘놀라운 일과 표징’이라고 소개된 것으로 병자 치유와 귀신 들린 자 치유였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던 걷지 못하는 사람을 걷게 만들었습니다. 나중에는 베드로가 지나갈 때 그 그림자에 덮이기만 해도 병이 나았고 귀신이 나갔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방법은 자기 소유물을 팔아서 필요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고 음식을 함께 나누어 먹는 일이었습니다. 경제적 평등을 이루고 배고픈 사람 없이 평화롭게 살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인 성령을 받은 사람들을 통해 일어나는 일은 언제나 그와 같습니다. 어느 시대이건 성령을 받은 사람은 다친 생명을 치유하는 일과 나눔을 통해 평화를 이루는 일을 행합니다. 그를 통해 비뚤어진 세대와 자기중심주의 시대에 맞서 구원의 공동체인 교회를 세웁니다.
그런데 그런 일은 제자들에게서 시작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에게서 시작된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셨던 일이 그 두 가지였습니다. 공생애 기간 동안 예수님은 가시는 곳마다 병자를 고쳐 주셨고, 귀신 들린 자에게서 귀신을 쫓아내 주셨습니다. 물론 오늘 우리들에게는 그런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다친 생명의 아픔과 고통을 직접 없애주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그의 아픔과 고통에 깊이 공감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뭐라도 하려고 노력할 때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기도 하는 것입니다. 예전에 라디오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기억납니다. 밤에 아내가 어깨가 아프다고 하여 남편이 그 밤에 동네에 있는 약국이란 약국을 다 돌아 파스를 사다가 붙여주었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어깨가 다 나은 것 같아 파스를 떼었는데 떼고 보니 안쪽에 비닐이 그대로 붙어있었다고 합니다. 약이 통증을 없애준 것이 아니라 남편의 마음과 정성이 통증을 없애준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나눔을 통한 평화도 이루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듣기 위해 나온 사람들을 위해 여러 번 적은 빵과 물고기로 수천 명을 배부르게 먹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뿐 아니라 삭개오 같이 많은 재산을 가진 사람으로 하여금 그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일을 통해 체험한 것은 기적과 배부름이 아니라 이 땅에 임한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4. 예수님이 하시던 일을 이어가기
교회란 다른 곳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말씀을 배우는 곳인 동시에, 예수님이 하시던 일, 제자들이 이어서 행하던 일을 이어가는 곳입니다.
유럽의 전래동화를 들려드리겠습니다. 한 마을이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오랜 전쟁과 기근으로 문을 굳게 닫아걸고 지냈습니다. 서로 왕래도 잘하지 않았습니다. 그 마을에 낯선 세 명의 여행자가 왔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여행자들을 위해서 잠자리도 먹을 것도 제공하지 않았습니다. 어려운 시대가 사람들의 마음의 문까지 닫게 만든 것입니다. 세 사람의 여행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돌멩이 수프를 만들려고 하는데 커다란 솥을 좀 내주시오.” 어느 집 문이 열리더니 솥을 주었습니다. 여행자들은 커다란 솥에 물을 가득 채우고는 정말 돌멩이를 넣고는 물을 끓였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하나둘 창을 열고는 그 여행자들이 무엇을 하는지 지켜보았습니다. 여행자들은 수프의 맛을 보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야, 기가 막힌대. 그런데 여기에 양파가 들어가면 더욱 맛이 있겠어.” 그러자 어떤 사람이 양파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런 식으로 이 집 저 집 문이 열리고, 감자 당근 양배추 옥수수 후추 소금 고기 우유 등이 수프에 들어갔습니다. 곧 구수한 냄새가 온 마을에 진동했고, 오래도록 문을 닫아걸고 지내던 사람들은 오래간만에 모두 한 자리에 모여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돌멩이 수프를 함께 먹게 되었습니다. 그간에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도 나누고,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오늘 우리가, 우리 교회가 해야 할 일은 바로 그 일입니다. 자기중심주의의 문을 열어젖히고 서로의 아픔과 고통을 치유하고 나눔을 통해 평화를 누리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를 경험하고 그 경험을 확대해나가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예루살렘 성전은 화려하고 제사를 많이 드리고 재산이 많은 성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성전에는 성전의 본질이 없었습니다. 가난한 이들을 돌보지 않았고 병든 자를 치유해 주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성전을 보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성전을 허물라” 46년 전 지금의 이 예배당을 건축한 후 봉헌감사예배를 드릴 때 박정오 목사님께서는 설교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성전을 허물라.” 교회가 본질을 잃어버리면 교회가 아니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릇된 교회도 허물어야 하지만 그릇된 세상도 허물어야 하며 무엇보다 자기중심주의에 깊게 빠져 있는 그릇된 나부터 허물어야 합니다. 현대의 뛰어난 신학자요 순교자인 본회퍼 목사는 자기중심주의에서 벗어나는 것이 우리 기독교인과 교회의 목표임을 <옥중서신>에서 이런 말로 표현했습니다. ‘타자를 위한 존재’(Dasein für andere). 인생이라는 것이, 신앙이라는 것이, 교회라는 것이 나를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 타자를 위해 주어진 것임을 깨달으라는 강력한 요구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교회의 존재 이유는 교회의 유지와 확장에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하시던 일을 이어가는 데 있습니다. 다친 생명을 치유하고 나눔을 통해 평화를 이루는 것, 자기중심주의를 뛰어넘어 타자를 위한 존재로 살아가는 것이 교회의 존재 이유이며 우리가 이어가야 할 일입니다. 우리 청파교회가 커다란 솥이 되면 좋겠습니다. 그 안에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마음과 정성을 쏟아 부어 맛있는 사랑과 연대의 수프를 끓여 이 시대의 상처받고 주린 영혼들을 먹일 수 있길 소망합니다. 그 귀한 일을 함께 이루어가는 청파교우들이 되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