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밑힘
김재흥(2026-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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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바쳤습니다. 더구나 약속을 받은 그가 그의 외아들을 기꺼이 바치려 했던 것입니다. 일찍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기를 "이삭에게서 네 자손이라 불릴 자손들이 태어날 것이다"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삭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도 되살리실 수 있다고 아브라함은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유하자면, 아브라함은 이삭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되받은 것입니다. 믿음으로 이삭은, 또한 장래 일을 놓고 야곱과 에서를 축복해 주었습니다. 야곱은 죽을 때에, 믿음으로 요셉의 아들들을 하나하나 축복해 주고, 그의 지팡이를 짚고 서서, 하나님께 경배를 드렸습니다. 믿음으로 요셉은 죽을 때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집트에서 나갈 일을 언급하고, 자기 뼈를 어떻게 할지를 지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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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설상가상과 막막함
좋으신 주님께서 주시는 위로와 평안과 새롭게 하시는 은혜가 교우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시기를 빕니다. 여러분 ‘사자성어’하면 어떤 사자성어가 제일 먼저 떠오르시나요? 대학시절 한 후배가 저에게,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자성어가 뭐에요? 물어보길래 설상가상이라고 답했더니 막 웃더군요. 왜 웃냐 물으니, 제일 먼저 떠오른 사자성어가 그 사람의 인생이라고 답하더군요. 그래서 저도 웃었습니다. 설상가상이라는 말의 뜻을 처음 배웠을 때, 눈이 내린 길 위에 서리까지 내렸다면 그 길을 가야만 하는 사람은 얼마나 힘들까?라는 생각이 저의 뇌리에 깊게 박혔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다 보면 꽃길을 걸을 때도 있지만, 설상가상의 길을 걸을 때도 있습니다. 하나의 고난만으로도 힘든데 고난 위에 또 하나의 고난이 얹히고, 때로는 그 위에 또 하나의 고난이 얹히기도 합니다. 설상가상의 상황을 만나게 되면 우리의 신체와 정신은 일종의 전투 모드로 변환되어서 그 힘든 시간을 버티고 견디게 해 줍니다. 그러나 그 설상가상의 시간이 오래 지속될 때, 한 달 두 달, 1년 2년 길어지면 몸과 마음 이곳저곳이 신음소리를 내며 깨어집니다. 몸에 병이 생기거나 마음이 정상작동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리고 삶은 막막해집니다. 직면한 문제들은 너무 크고 그 문제들을 해결하기에는 자신이 너무 작고 연약하게 느껴집니다. 자신의 수고와 노력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호수에 돌 하나 던지는 것처럼 무의미하게 느껴집니다. 설상가상과 막막함.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보며 갖게 되는 느낌입니다. 전쟁은 계속되고, 사람들은 계속 죽어나가고, 나라 간 경제 갈등은 더욱 고조되고, 기후질서는 계속 붕괴되고 있습니다. 문제 위에 문제는 자꾸 쌓여만 가는데 생명과 평화의 세상을 만들려는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가? 평화세상을 여는 녹색교회인 청파교회의 노력은 진정 무슨 의미를 가지는 것인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노력이 과연 무엇을 얼마나 바꿀 수 있는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2. 믿음의 사람들 : 아브라함, 야곱, 요셉
히브리서 저자는 11장에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확신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씀은 ‘믿음은 희망이 잘 보이지 않는 막막한 세상을 살아갈 힘이 된다’는 말씀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많은 믿음의 사람들에 대해서 말했는데 오늘은 그중에서 아브라함과 야곱과 요셉의 믿음에 대해서 묵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라 일컬어지는 사람입니다. 히브리서 11:17~19에는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바치려고 했던 일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면 하나님께서 이삭을 다시 살려주실 것을 믿었기 때문에 제물로 바치려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때가 아브라함의 믿음이 가장 크게 드러난 때라고 보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생애를 보면 그는 늘 믿음 가운데 살았던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고향땅을 떠나 약속의 땅을 향해 출발할 때도, 번번이 많은 자손과 많은 땅을 주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도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4:18에서 아브라함은 믿을 수 없는 가운데에서도 믿었다,라고 말했습니다. 막막한 가운데에서도 믿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브라함의 삶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아브라함이 믿을 수 없는 가운데 믿었다는 것만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삶을 통해 드러난 형태에도 주목해야 합니다. 우물을 두고 이웃과 싸우지 않았고, 살 땅을 두고 조카와 다투지 않았습니다. 좋은 땅을 선점한 조카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습니다. 모두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은 믿을 수 없는 가운데에서 믿은 것뿐 아니라 바른 일을 하기 힘든 가운데에서도 바른 일을 하는 것이라 일러주고 있습니다.
야곱은 믿음의 사람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사람이었습니다. 야곱은 욕심의 사람, 속이는 사람이었습니다. 형의 장자권에 욕심을 냈습니다. 결국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장자권을 빼앗았습니다. 도망자 신세가 되어 외삼촌 집에 가서 20년 동안 더부살이를 했습니다. 야곱은 일가를 이루어 고향 땅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형, 에서를 만날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사람을 먼저 보내 상황을 살펴보니 형이 사람들을 몰고 와서 자기와 가족들을 다 죽이려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 얼마나 막막했을까요? 꼼짝 없이 죽게 생겼습니다. 이 상황을 만든 것이 20년 전의 자신이라는 사실이 더 기가 막혔을 것입니다. 20년 동안 고생해서 이룬 일가를 자기 손으로 모두 죽게 만들게 생긴 것입니다. 그때 야곱은 고향을 떠날 때 ‘다시 이곳으로 너를 돌아오게 하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떠올렸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그 믿음으로 무작정 형에게로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야곱의 믿음은 과거에 자기가 지은 죄에 대해 책임을 지는 행동으로 이어졌습니다. 550마리나 되는 가축을 형에게 선물로 보냈습니다. 그 정도면 에서가 아버지에게서 장자로서 물려받아야 하는 양만큼은 되었을 것입니다. 야곱은 형을 만나 형에게서 하나님의 얼굴을 보았고 형제를 서로를 끌어안고 울었습니다. 야곱은 믿음이라는 것이 무작정 하나님께 약속을 이루어 달라 떼를 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기 위해 자기의 욕심을 뛰어넘고 자기 잘못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라 일러주고 있습니다.
요셉은 아버지 야곱의 사랑을 듬뿍 받는 아들이었으나 그 사랑으로 인해 형들에게서는 미움을 듬뿍 받았습니다. 요셉에 대한 형들의 미움은 요셉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만큼 컸습니다. 형들은 요셉을 죽이려했습니다. 그러나 유다의 만류로 요셉은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가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파라오의 경비대장 보디발의 집에서 집사로 일하게 되었는데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시종장의 꿈을 해몽해주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아무도 해몽하지 못한 파라오의 꿈을 해몽해 줌으로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요셉의 예상대로 애굽과 팔레스타인 전역에 가뭄이 들자 요셉의 형들이 양식을 구하기 위해 애굽의 총리를 찾아왔습니다. 요셉은 자신을 죽이려했던 형들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그 형들 때문에 겪었던 고난이 주마등처럼 떠올랐을 것입니다. 요셉에게는 형들을 죽일 이유와 힘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형들의 죄를 용서해 주었습니다. 형들에게 자신이 요셉임을 밝히자 형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지었던 죄로 인하여 두려워 떨었습니다. 그때 요셉이 형들에게 말했습니다. “나를 이리로 보낸 것은 형님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아, 얼마나 대단한 고백입니까? 요셉은 지난날 자신이 받은 상처와 감정에 따라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따라 행동하지 않고 하나님의 마음을 따라 행동했습니다. 요셉은 믿음이란 우리의 상처와 감정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따라 사는 것이라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3. 믿음은 밑힘이 되고
우리는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믿음은 믿을 수 없는 가운데에서 믿을 뿐 아니라 바른 일을 하기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바른 일을 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무작정 하나님께 약속을 이루어 달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기 위해 우리의 욕심을 뛰어넘고 책임질 것을 책임지는 것입니다. 믿음은 우리의 상처와 감정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믿음은 그런 것입니다. 예수님은 믿음의 실천성을 좀더 강하게 표현하셨지요. “나 보고 주여 주여 하는 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갈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갈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것과 바른 일을 꾸준히 행하는 것, 욕심을 뛰어넘고 책임을 지는 것, 내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따라 사는 것은 분리될 수 없습니다. ‘믿음은 밑힘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더 이상 바른 일을 해나갈 힘도 없고, 책임을 감당할 힘도 없고, 하나님의 마음이 아니라 나의 감정을 따라 산다면 우리는 믿음, 삶의 밑힘이 바닥난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창세기 15장 말씀이 떠오릅니다. 아브라함은 아들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믿음이 약해졌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를 장막 밖으로 불러내 하늘의 별을 보게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별을 하나하나 세면서 바닥났던 믿음이 다시 차올랐습니다. 아브라함은 여전히 막막한 가운데에서 믿음의 길을 계속 가기로 선택했고 하나님께서는 그런 아브라함을 의롭다고 여겨주셨습니다. 우리도 믿음이 약해질 때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고요히 하나님을 바라보며 믿음이 차오를 때까지 그 앞에 머물러야 합니다. 그리고 여전히 막막한 가운데에도 믿음의 길을 계속 가기로 선택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도 의롭다고 여겨 주실 것입니다. ‘중꺾마’라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중요한 것은 꺾여도 계속 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는데 하물며 우리 믿는 사람들은 어떠해야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꺾여도 계속 믿음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청파교회는 2021년부터 로힝야 난민촌을 후원하고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개척자들이라는 단체를 통하여 후원하고 있습니다. 개척자들은 청파교회와는 20년 이상의 교류가 있는 단체로 분쟁 및 재해지역에서 평화활동을 하는 단체입니다. 2017년 미얀마 군부의 공격을 피해 탈출한 100만 이상의 로힝야족 사람들이 방글라데시 정부가 마련한 난민 수용소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로힝야 난민들은 맨 흙바닥에 대나무와 비닐 등으로 집을 짓고 살고 있습니다. 위생 상태가 좋지 않고, 식량이 부족하고, 외부 출입이 자유롭지 않고, 교육 기회가 거의 주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개척자들의 간사님들은 현지를 방문하여 그곳에서 교육과 의료활동과 생활자립활동을 하는 이들을 돕고 있습니다. 주중에 ‘개척자들’ 소식지가 왔는데 그 소식지에는 로힝야 난민촌에 사는 코위타자 베굼 씨의 감사 편지도 있었습니다.
저는 코위타자 베굼(38세)입니다. 로힝야 난민촌에서 자수 워크숍 강사로 활동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변함없는 지원에 진심으로 감사드리는 마음을 전하고자 이 편지를 씁니다. 자수 워크숍에 대한 여러분의 지원은 저희의 삶을 완전히 바꿔 놓았습니다. 저는 학살 생존자로서, 특히 여성으로서 기회가 매우 부족했습니다. 하지만 이 워크숍은 저에게 그리고 함께하는 여성들에게 작은 숨구멍이 되었습니다. 자수라는 활동을 통해 우리는 즐거움과 자립심을 향상시킬 수 있었습니다. 참가자들이 받게 된 재봉틀은 우리가 뭔가 생산적인 것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줄 뿐만이 아니라 우리 가족들에게 중요한 수입원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이 일은 가정을 좀 더 안정된 분위기로 가꾸어 갈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따뜻한 마음과 지원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의 영향은 우리가 하는 모든 바느질, 한 땀 한 땀에 담겨 있으며, 이에 대해 깊이 감사하는 마음을 간직하게 됩니다.
우리의 작은 도움이 막막한 상황 가운데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큰 힘이 되었다는 말이 저에게도 힘이 되었습니다. 믿음은 결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에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생명과 평화의 하나님을 굳게 믿을 때 우리는 힘든 상황 속에서도 서로에게 바른 일을 하게 되고, 자기의 잘못에 대해 책임을 지게 되고, 상대를 나의 상처와 감정으로 대하지 않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대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믿음의 삶은 막막한 상황에 놓인 누군가에게 밑힘이 됩니다. 우리 청파교우들과 이 시대 믿음의 백성들이 그런 굳건한 믿음의 사람과 밑힘의 사람이 되어 살아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