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은 빛이 되기도 하고
김재흥(2025-08-17)
듣기
왕이 셈을 가리기 시작하니, 만 달란트 빚진 종 하나가 왕 앞에 끌려왔다. 그런데 그는 빚을 갚을 돈이 없으므로, 주인은 그 종에게, 자신과 그 아내와 자녀들과 그밖에 그가 가진 것을 모두 팔아서 갚으라고 명령하였다. 그랬더니 종이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참아 주십시오. 다 갚겠습니다' 하고 애원하였다. 주인은 그 종을 가엾게 여겨서, 그를 놓아주고, 빚을 없애 주었다. 그러나 그 종은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 하나를 만나자, 붙들어서 멱살을 잡고 말하기를 '내게 빚진 것을 갚아라' 하였다. 그 동료는 엎드려 간청하였다. '참아 주게. 내가 갚겠네.' 그러나 그는 들어주려 하지 않고, 가서 그 동료를 감옥에 집어넣고, 빚진 돈을 갚을 때까지 갇혀 있게 하였다. 다른 종들이 이 광경을 보고, 매우 딱하게 여겨서, 가서 주인에게 그 일을 다 일렀다. 그러자 주인이 그 종을 불러다 놓고 말하였다. '이 악한 종아, 네가 애원하기에, 나는 너에게 그 빚을 다 없애 주었다. 내가 너를 불쌍히 여긴 것처럼,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겼어야 할 것이 아니냐?' 주인이 노하여, 그를 형무소 관리에게 넘겨주고, 빚진 것을 다 갚을 때까지 가두어 두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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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광복절
좋으신 주님께서 주시는 위로와 평안과 새롭게 하시는 은혜가 교우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시길 빕니다. 지난 주 금요일은 8.15 광복절 80주년이었습니다. 많은 분이 아시겠습니다만, 우리나라 국민들이 광복을 알게 된 것은 1945년 8월 15일이 아니었습니다. 대부분의 국민은 8월 15일 정오 일황이 라디오 방송을 통해 연합국에게 항복을 공식 선언한 것을 몰랐다고 합니다. 라디오를 가진 이가 별로 없었기 때문입니다. 경성 곳곳에서 ‘대한독립 만세’의 함성이 울려 퍼진 것은 그 다음날인 8월 16일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80년 전 어제 서대문 형무소와 종로와 남대문과 서울역 앞으로 수만 명이 나와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고, 그 이후 해방과 광복의 소식은 전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그날 사람들은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얼마나 감격스러웠을까요.
국가보훈부에 따르면 독립유공자로 포상받은 분은 18,000분 가량입니다. 그런데 이름 없이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사람들, 독립군, 의병, 3.1만세 운동에 참여했던 분들까지 합치면 독립운동을 하셨던 분은 수백만 명이 넘습니다. 한 분 한 분 다 그 이름을 알 수 없지만, 그 모든 분께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지난주 목요일 해외에서 평생 독립운동을 하시다가 돌아가신 여섯 분의 유해가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중에 충남 태안 출생의 고 문양목 지사의 유해는 고국을 떠난지 120년만에 돌아온 것입니다. 문지사는 1905년 미국으로 망명해 대동보국회를 결성하여 평생을 조국의 독립을 위해 노력하다가 해방을 보지 못하고 1940년 미국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숨을 거두시며 “우리 조국은 반드시 독립된다. 내가 죽으면 내 뼈를 고국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기셨다고 합니다. 뉴스 보도를 듣다가 창세기의 요셉이 떠올랐습니다. 요셉은 이집트 땅에서 죽으면서 후손들에게 이렇게 부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너희를 약속의 땅에 이르게 하실 터인데, 나의 뼈를 이곳에서 옮겨서 그리로 가지고 가야 한다.” 먼 타국에서 살았지만 항상 조국을 마음속에 품고 살다가 돌아가신 분들의 마음이 모두 그 마음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나라 어느 기업에서는 몇 해 전부터 해마다 광복절을 앞두고 국가보훈부와 함께 독립운동가들을 기념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2년 전에는 <세상에서 가장 늦은 졸업식>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독립운동가들 중에는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 독립운동을 하신 분들도 있는데, 그분들은 독립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일제에 의해 강제 퇴학당해 졸업식을 하지 못했습니다. 프로젝트 진행팀은 후손들에게서 독립운동가들의 사진을 얻어 AI 기술로 학생시절의 얼굴을 만들어 졸업앨범을 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손들을 모셔 합동 명예졸업식을 진행했고 정성껏 만든 졸업 앨범과 졸업장을 드렸습니다. 졸업식에 참여한 후손들은 자신의 졸업식처럼 눈물을 흘리며 감격하였습니다. 작년에는 <처음 입은 광복>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독립운동가분들 중에는 옥중에서 돌아가신 분들이 많은데 그분들의 마지막 남은 사진은 대부분 죄수복을 입은 빛바랜 사진이었습니다. 후손들에게는 죽어서도 죄수의 신분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슬픈 사진이었습니다. 그래서 프로젝트 진행팀은 AI 기술을 통해 사진 속에 있는 죄수복을 벗겨드리고 그분들에게 걸맞는 새로운 한복을 입혀드렸습니다. 이육사 시인께는 특별히 청색 도포를 입혀 드렸습니다. 이육사 시인의 <청포도>라는 시 속에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오신다.” 빛바랜 죄수복을 입은 수심 가득한 얼굴의 사진이 아니라 밝은 색의 한복을 입은 환한 얼굴의 사진을 받아든 후손들은 모두 기뻐하셨습니다. 그 프로젝트의 영상들을 보며, 우리가 독립운동을 하신 분들에게 큰 빚을 졌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되었고, 그 귀한 분들을 감사히 기억할 수 있도록 노력하신 그 기업과 수고한 손길들에게도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2. 빚진 자
마태복음 18장에는 왕과 두 신하의 비유가 나옵니다. 한 신하가 왕에게 많은 빚을 졌습니다. 만 달란트나 빚을 졌습니다. 1달란트가 대략 노동자의 16년치 품삯이니 만 달란트면 16만년치 품삯입니다.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큰 돈입니다. 한 개인이 일생을 다 바쳐도 도저히 벌기도 힘들고 갚기도 힘든 돈입니다. 왕은 신하를 불러 돈을 갚으라 하였습니다. 그러자 신하는 빚을 갚을 돈이 없다고 했습니다. 왕은 “그러면 너 자신과 아내와 자녀들과 가진 모든 것을 팔아서 갚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신하는 왕 앞에 무릎을 꿇고 “참아 주십시오. 다 갚겠습니다.” 애원하였습니다. 왕은 그 신하를 가엾게 여겨서 그를 놓아주고 빚을 모두 탕감해 주었습니다. 참으로 관대한 왕입니다. 신하는 왕으로부터 갚을 수 없는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이후 그 신하는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을 빚진 동료를 만났습니다. 백 데나리온은 100일치 품삯입니다. 여러분이 그 빚을 탕감 받은 신하였다면 그 순간 동료에게 뭐라고 말하시겠습니까? “여보게, 나는 방금 왕으로부터 일만 달란트 빚을 모두 탕감 받았네.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네. 자네가 내게 빚진 백 데나리온은 갚지 않아도 되네. 일만 달란트를 탕감 받았는데 백 데나리온이 대수인가.” 이게 정상인데 그 신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 동료의 멱살을 잡고 “내게 빚진 것을 갚아라”라고 말했습니다. 그 동료는 “참아주게. 내가 다 갚겠네”라고 말했지만 그 신하는 동료를 무자비하게 대했습니다. 그를 법적으로 처리했습니다. 그를 감옥에 집어넣고 빚진 것을 다 갚을 때까지 갇혀 있게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왕은 그 악한 신하를 불러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애원하기에 나는 너에게 그 빚을 다 없애주었다. 내가 너를 불쌍히 여긴 것처럼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겼어야 할 것이 아니냐?” 화가 난 왕은 그 신하를 형무소 관리에게 넘겨주고, 빚진 것을 다 갚을 때까지 가두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은 그냥 죽을 때까지 가두라는 말이었습니다. 참으로 씁쓸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주변에서도 그와 같은 경우를 드물지 않게 일어나기에 더욱 씁쓸하게 느껴지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용서’에 초점을 두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큰 죄를 용서하신 것을 생각했을 때 우리는 서로의 잘못을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며 살아야 한다는 의미로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말씀을 ‘빚을 진다는 것’에 초점을 두고 의미를 생각해 보려 합니다. 우리는 모두 빚쟁이입니다. 우리는 일생 빚을 지고 살아갑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부모님께 갚을 수 없는 큰 빚을 집니다. 육신을 거저 받고 다 크고 자랄 때까지 의식주가 모두가 무료입니다. 이후 스승 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것을 거저 받습니다. 가르침과 돌봄과 관심을 무상으로 받지요. 그뿐입니까? 우리는 일생 내내 자연으로부터 값을 헤아릴 수 없는 것들을 무한정 공급받습니다. 햇빛, 맑은 물, 신선한 공기 등등. 우리 삶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그 모든 것을 거저 받습니다. 모두가 다 큰 빚입니다. 그 큰 빚을 다 합치면 일만 달란트쯤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문제는 거기에 있습니다. 그 귀하고 고마운 것들을 빚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마치 생이 주어질 때 ‘당연히 따라오는 것’, ‘본래부터 내 것’으로 여깁니다. 그러니 고마워하지도 않고 갚을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누군가에게 베푼 선행 하나, 누군가에게 사준 밥 한 끼, 누군가를 위해 쓴 한 시간을 꼭 돌려받아야 할 것으로 여기고, 내가 그에게 한 만큼 그가 내게 갚지 않는다 싶으면 화를 냅니다. 악한 신하의 모습과 오늘 우리의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3. 빚은 빛이 되기도 하고
영화 <밀양>에는 남편과 사별하고 아들과 둘이 살아가는 여인, 신애가 나옵니다. 신애는 밀양에서 피아노 학원을 열었습니다. 그에게 돈이 많다고 여긴 이웃은 그 아들을 유괴하였고 결국 죽였습니다. 아들을 잃고 거의 정신을 놓았던 신애는 이웃들의 권유로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했고, 신앙생활을 하며 마음도 조금씩 안정을 되찾았습니다. 신애는 자신의 아들을 죽인 자를 용서하기 위해 교도소에 찾아가 살인범을 마주했습니다. 신애는 말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전해주러 왔어요.” 그러자 살인범은 평안한 얼굴로 말했습니다. “저도 이곳에서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저의 죄를 다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 말은 신애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신애는 사람들에게 ‘내가 그 인간을 용서하기 전에 어떻게 하나님이 그를 용서하실 수 있냐’고 질문했습니다. 이는 질문이라기보다는 살인범에 대한 질책이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기 전에 나와 내 아들에게 용서를 구했어야했어’라는 질책. 신애의 마음과 신앙은 무너졌습니다. 그는 결국 교회를 떠났습니다. 우리 개신교회는 죄와 죄에 대한 용서를 강조합니다. 그런데 너무나 많은 기독교인이 밀양의 살인범처럼 죄를 나와 하나님 사이의 문제로만 생각합니다. 내가 죄를 지은 사람, 빚을 진 사람에게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 빚을 갚아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하나님께만 용서받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는 자신이 지은 죄와 진 빚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스스로 용서하고 탕감해 줍니다. 그것은 일종의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한 셀프 용서와 탕감입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진 빚을 갚지 않을 때, 그 빚을 자기 스스로 탕감해 줄 때 그 빚은 한 사람의 삶을 파탄 내는 어둠과 절망이 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도행전 2장은 오순절에 제자들이 모여 있을 때 제자들 한 사람 한 사람 위에 성령의 불이 임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3년 동안 동고동락하면서 예수님의 말씀과 기적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듣고 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님이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그의 마음을 알아드리지 못하고 그저 예수님을 이용해 한 자리 차지할 생각이나 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붙잡히시자 그 곁을 지켜드리기는커녕 제 한 몸 살고자 도망쳤습니다. 제자들은 빛이 아니라 어둠에 가까운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제자들은 어떻게 예수님의 말씀처럼 어둠을 밝히는 빛이 될 수 있었던 것이었을까요? 예수님이 돌아가신 이후 제자들의 마음에는 무엇이 남아 있었습니까? 빚진 마음이 아니었을까요? 예수님으로부터 너무 많은 것을 받았음에도 아무것도 해드리지 못한 미안함, 죄송함, 이제라도 예수님을 위해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이 아니었을까요? 빚진 마음, 빚을 갚으려는 마음에서는 빛이 납니다. 빚진 마음, 빚을 갚으려는 마음이 성령입니다.
지난 8월 14일 저녁에 광복절 전야제가 국회의사당에서 열렸습니다. 많은 시민들이 참여한 축제의 자리였습니다. 전야제 타이틀은 <대한이 살았다>였습니다. ‘대한이 살았다’는 노래의 제목이기도 합니다. 이 노래는 일제강점기 때 서대문 형무소 여성감방8호실에 수감되었던 징역수, 전중이라 불렸던 징역수 일곱 분이 함께 부르던 노래였습니다.
전중이 일곱이 진흙색 일복 입고 / 두 무릎 꿇고 앉아 하느님께 기도할 때
접시 두 개 콩밥덩이 창문 열고 던져줄 때 / 피눈물로 기도했네 피눈물로 기도했네
대한이 살았다 대한이 살았다 / 산천이 동하고 바다가 끓는다
에헤이 데헤이 에헤이 데헤이 / 대한이 살았다 대한이 살았다
그 노래를 함께 불렀던 일곱 분은 김향화 권애라 신관빈 심명철 임명애 어윤희 유관순이었습니다. 유관순, 1902년 천안 병천 출생. 이화여고 재학 중 1919년 3.1 만세 운동에 참여했고 이후 병천에 내려가 4월 1일 아우내 장터에서 만세 운동을 주도했습니다. 그때 아버지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주동자로 재판을 받을 때 “나는 왜놈에게 굴복하지 않는다”다며 의자를 집어던졌습니다. 재판 후 서대문 형무소에 투옥되었습니다. 유관순은 옥 안에서도 독립만세를 외쳤습니다. 그로인해 심한 구타를 당하였고 출소를 이틀 앞두고 옥사하였습니다. 그의 나이 18세였습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은 유관순과 수많은 순국열사들이 있었기에 대한민국이 살았고, 우리가 살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분들에게 큰 빚을 졌습니다. 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이들에게도 빚을 지고 있습니다. 또한 하늘 땅 강 바다와 그것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뭇 생명들에게도 빚을 지고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 가장 큰 빚을 지고 있습니다. 그 많은 빚을 언제 다 갚을 수 있을까요? 중요한 것은 우리가 빚을 지고 있는 존재임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그 빚을 갚기 위해 노력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 이 세상의 어둠을 몰아내는 작은 빛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오늘 우리가 누리를 모든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그 누구에게도 갚을 빚이 없다고 여기면 산다면 우리는 세상과 주변 사람들에게 큰 어둠이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조국의 광복을 기념하는 절기에, 함께 살아가는 이들과 뭇 생명과 이 시대에 어둠이 아니라 빛을 전하며 살아가는 청파의 교우들과 믿음의 백성들이 되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