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9. 땅끝까지
설교자 김재흥 목사
본문 행. 1:8
설교일시 2023-05-07
오디오파일 s20230507-2_48.mp3 [11322 KBy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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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까지>

그러나 성령이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능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마침내 땅 끝에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다. - 행전 1:8

• 교회설립기념일
좋으신 주님께서 주시는 위로와 소망과 새롭게 하시는 은혜가 저와 여러분 위에 함께하시기를 빕니다. 그리고 갈등과 대립을 지속하고 있는 이 지구촌 위에도 평화의 주님께서 함께하시기를 빕니다.

오늘은 청파교회 설립 115주년 기념주일입니다. 벌써 이 교회가 세워진 지 100년하고도 15년이 지났습니다. 100주년 감사예배를 드린 게 엊그제 같은데 그로부터 15년이 또 지났습니다. 2008년에 100주년 행사를 준비하며 김기석 목사님과 준비위원들이 모여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지나온 100년은 감사함으로 돌아보면 될 것 같은데, 새로운 100년은 무엇을 목표로 나아가야 하는가? 그에 대한 답은 생명과 평화였습니다. 생명과 평화의 부재로 하나님이 손수 지으신 창조세계가 무너지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인간이 비인간화 되는 일이 우리의 삶의 자리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를 잊지 않으려고 교회 전면 양쪽 벽에는 커다랗게 ‘생명’과 ‘평화’라는 배너를 만들어 달았습니다. 모니터를 설치하며 떼었는데 조금 모양을 달리해 다시 달면 좋겠습니다.

지난 15년간 청파교회는 여러 생명과 평화의 활동을 해왔습니다. 탄소 발생을 줄이기 위해 교회 옥상에 햇빛발전소를 세웠고, 사막화 방지를 위해 몽골에 은총의 숲을 조성했습니다. 식수가 부족한 캄보디아에 우물 13개를 파주었고, 교육환경이 열악한 케냐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기도 했습니다. 경제적 상황이 어려운 쪽방촌과 교회들을 후원했고, 생명과 평화운동을 하는 여러 단체를 후원하고 그들과 연대활동을 해왔습니다. 어찌 보면 일어나는 문제들에 비해 지극히 작은 일들은 한 것이지만, 생명과 평화의 세상에 있어서는 의미 있는 활동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햇빛발전소를 통해 청정에너지 53,836KW를 생산했고 그 수익금으로 겨울이면 난방비를 걱정하는 에너지 빈곤층을 도왔습니다. 몽골 사막에 한 뼘 만하게 심었던 작은 나무들은 성인 키보다 훨씬 큰 나무로 자라 숲을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몽골에 은총의 숲이 더 풍성한 숲으로 변하는 사이, 청파교회 푸른언덕에도 새 교우가 많이 찾아오면서 이전보다 더 크고 짙푸른 언덕이 되었습니다. 감사한 일이며 또한 막중한 책임이 느껴지는 일이기도 합니다.

• 청파의 초석, 양우로더 여사
오늘은 교회 설립기념일을 맞아 청파교회 설립자인 양우로더 여사의 삶과 사도행전의 말씀을 통해 교회의 사명을 새롭게 새겨보고자 합니다. 양우로더 여사는 1878년생입니다. 본명은 알지 못합니다. 세례명 ‘로다’를 그 당시 발음대로 표기한 ‘우로더’를 이름으로 사용했습니다. 우로더 여사는 양반집에서 출생하여 19세에 결혼했습니다. 그런데 결혼생활은 불행했고 결국 이혼을 당해 본가로 돌아와 지냈습니다. 그의 남동생 양재창은 집에 돌아와 방 안에서만 지내던 누이를 안타깝게 지켜보다가 누이에게 상동교회에 나가 신앙생활 해볼 것을 권유했습니다. 조심스레 쓰개치마를 둘러쓰고 교회에 갔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들어보니 좋았습니다. 그래서 빠지지 않고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말씀을 들으며 우로더 여사는 변했습니다. 방에 틀어박혀 있던 이가 밖으로 나가 말씀을 전하는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오늘의 서울역 서편 지역에 있는 연화봉 부근에 가서 열심히 복음을 전했고, 그 결과 1908년에 연화봉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 교회가 우리 청파교회의 뿌리입니다.

그뿐 아니라 우로더 여사는 여자도 배워야 한다는 생각에 연화봉 여학교를 세워 여자아이들을 모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또 우로더 여사는 선교사가 세운 부인성경학원에 등록하여 자신이 학생이 되기도 했습니다. 성경학원 졸업 후에는 전도부인이 되어 서울과 경기 지역 곳곳에서 복음을 전해 여러 교회를 세웠습니다. 노블 선교사의 선교보고문을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노블은 서울 지역 전도부인 모임에서 연화봉교회의 성경공부 모임이 재미가 있고 수적으로도 증가하였다는 보고를 듣고는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우로더 전도부인 때문이라고 답했습니다. 우로더 여사에게는 그런 힘이 있었던 것입니다. 우로더 여사는 1925년에 한국 감리교 여성 1호 선교사로 선발이 되어 만주에서 선교활동을 했습니다. 귀국 후에는 폐교 직전의 상태로 운영이 어려워진 연화봉 여학교를 살리는 일에 매진했습니다. 그러던 중 1943년 65세의 나이로 별세하였습니다.

과거와 상처에 붙들려 작고 어두운 방에 틀어박혀 살던 여성이 말씀을 듣고 그 방에서 나와 사람들에게 자신에게 생명의 빛이 되었던 말씀을 전했습니다. 이혼녀를 바라보는 사회적 편견이 있었겠지만, 그에 짓눌리지 않았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 당시 교육에서 배제되는 게 당연시 되었던 여자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학교를 세웠습니다. 여자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자신의 시간과 물질과 재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또한 연화봉 지역에서만 말씀을 전한 것이 아니라 서울과 경기 지역 곳곳과 만주까지 가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렇게 믿음 안에서 자신의 아픔을 뛰어넘고, 사회적 편견을 뛰어넘고, 많은 곳에 말씀을 전하고, 지극히 작은 자에게 다가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셨던 분이 우리 청파교회의 초석이라는 것이 참으로 자랑스럽고 감사합니다. 우로더 여사의 삶을 살펴보노라면, 사도행전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합니다. 사도들의 이야기와 우로더 여사의 삶이 다르지 않습니다.

• 성령, 교회를 탄생시키다
사도행전의 핵심 구절은 1:8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개역) 성령을 받은 예수의 증인들이 가는 곳마다 교회 공동체를 세운 이야기가 사도행전입니다. 처음 성령이 임한 곳은 예루살렘의 다락방이었습니다. 성경은 그 다락방에 임한 성령이 바람처럼 불고 불처럼 빛났다고 표현했습니다. 바람은 하나님의 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처음에 흙으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시자 온전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처럼 두려움과 실망 속에서 생기를 잃고 그저 한 덩이의 흙과 같았던 제자들 안에 하나님이 숨을 불어넣어 주시자 제자들은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불은 새 창조의 빛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 가득한 가운데 말씀으로 빛이 있으라 하시며 천지창조를 시작하셨습니다. 그처럼 하나님께서는 어둠 속에 있던 제자들을 빛 삼아 새로운 세상 만들기를 시작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에 의해 새롭게 창조된 제자들, 빛의 존재가 된 제자들이 일으킨 첫 사건은 ‘방언’이었습니다. 아니 그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소통’이었습니다. 제자들의 방언은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는 천상계의 언어가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었습니다. 유월절 명절을 맞아 세계 각지에서 예루살렘에 와 있던 순례자들이 모두 그 말을 알아들었습니다. 이 사건은 바벨탑 사건으로 인해 언어가 뒤섞여 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게 되었던 것과 정반대되는 사건이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사람들이 분열되고 나누어질 필요가 없이 성령으로 인해 서로 소통하고 하나가 될 수 있는 새로운 세상이 열린 것입니다.

성령을 받은 제자들은 다락방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이 하나님께 받은 것을 그대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생기를 잃은 자들에게 하나님의 생기를 전해 주었습니다. 어둠 속에 있던 이들에게 빛을 전해 주었습니다. 삶의 배경이 다른 사람들과도 마음을 터놓고 소통했습니다. 그러자 평생 일어서지 못하던 자가 일어나 걷게 되었습니다. 많은 병자가 나음을 입었습니다. 심지어 죽은 자도 다시 살아났습니다.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던 자들은 자신의 소유를 팔아 사도들 발아래 가져다 놓았고, 사도들은 그것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사도들을 중심으로 마음을 나누고 소유까지도 나누는 하나의 공동체가 생겼습니다. 교회가 탄생한 것입니다.

• 넘어서는 공동체
그러나 예수를 죽였던 이들은 교회 공동체를 없애려 했습니다. 사도들을 잡아 겁주고 협박했고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위기를 맞았지만 초대교회 공동체는 들불처럼 번져 나갔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온 유대로, 온 유대에서 사마리아로, 사마리아에서 시리아로, 시리아에서 튀르키예로, 튀르키예에서 그리스로, 그리스에서 로마로 퍼져나갔습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범위에 대한 인식도 커져갔습니다. 처음 교회였던 예루살렘 교회는 유대 기독교인들만 있던 공동체였습니다. 유대 기독교인들은 사마리아 사람을 원수처럼 여겼었지만, 사마리아 위에도 성령을 통해 회복과 치유의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보며, ‘사마리아는 부정하다’는 인식을 버리고 사마리아 땅에 들어가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베드로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이방인 백부장 고넬료 가정에 가서 복음을 전했고, 이방인에게도 성령이 임하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그런데 일부 유대 기독교인은 베드로가 이방인 집에 들어가 그들과 함께 식사한 것을 문제 삼았습니다. 율법에 따르면 유대인은 이방인과 절대로 함께 식사할 수 없었습니다. 베드로는 ‘우리가 하나님께 성령을 선물로 받은 것처럼 이방인들도 그 선물을 받았다.’라고 말했습니다. 유대 기독교인들은 베드로의 말을 받아들여, 이방인에게도 성령이 임할 수 있음을 인정했습니다. 그러자 이제 일부 유대 기독교인은 이방 기독교인이 복음을 믿으려면 할례를 받고 율법을 준수해야만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초대교회는 회의를 열었고, 우상에게 바친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하는 것 외에는 이방기독교인에게 짐을 지우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파격적인 결정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복음을 위해 자신들이 목숨처럼 여기던 율법과 할례를 내려놓았습니다.

성령은 제자들에 앞서 인간이 정해놓은 선을 넘어 역사하셨습니다. 인종, 국적, 언어, 문화, 남녀성별, 역사적 갈등, 율법과 같이 인간이 만들어 놓은 절대적 기준을 넘어 역사하셨습니다. 초대교회는 성령의 역사하심을 보며 자기들이 붙들고 살던 견고한 기준들을 다 내려놓았습니다. 그랬기에 교회의 범위는 ‘유대인’에서 ‘사마리아인’으로, ‘사마리아인’에서 ‘이방인’으로, ‘율법과 할례’에서 ‘은혜와 자유’로 확장되었던 것입니다. 그런 넘어섬이 없었다면 오늘 우리들에게까지 복음은 결코 전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교회는 넘어서는 공동체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이 만들어 놓은 선을 넘어 역사하셨기에 그 하나님을 따라서 선을 넘어서는 공동체가 교회입니다. 넘어서되 넘어섬 자체를 위해 넘어서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기에 넘어서는 것입니다. 바울은 가장 큰 성령의 은사는 방언도, 통변도, 예언도, 지식도 아니라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자기를 높이고 자기의 영역을 넓히기 위해 선을 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에 선을 넘는 공동체가 교회 공동체입니다.

• 교회의 본질
저는 작년 가을에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를 다녀왔습니다. 교회에서 20년 사역을 기념하며 안식월을 주셔서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프랑스 생장에서부터 야고보 사도가 묻혀 있다고 여겨지는 콤포스텔라까지 800킬로미터를 걸었습니다. 연일 깨끗하고 파란 하늘을 보며 사방이 시원하게 뻥 뚫린 대지를 걸었습니다. 참 좋았습니다. 참 좋았지만 때때로 고되고 힘들기도 했습니다. 무릎은 시큰거리고 발에는 물집이 생겼습니다. 하루에 평균 28킬로미터를 걸었는데 걷고 나면 알베르게라고 하는 숙소에서 쉴 수 있었습니다. 알베르게는 우리나라의 게스트하우스 같은 곳인데, 어떤 곳은 현대식 건물이었고 어떤 곳은 옛날 교회나 수도원 건물을 개량한 곳이었습니다. 제가 중간쯤에서 묵었던 ‘프엔테 피테로’라는 곳에 있던 성 니콜라스 교회는 옛 교회 건물을 거의 그대로 알베르게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봉사자 세 명에 의해 운영이 되고 있었고 이용금액은 정해져 있지 않아 각자 내고 싶은 만큼 내면 됐습니다. 그 교회는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기 위해 전기도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건물 뒤편의 화장실과 샤워실에만 전기가 들어왔습니다. 봉사자들은 순례자들을 위해 저녁식사를 준비해 주었습니다. 식탁이 차려졌고 식탁 위에는 촛불이 켜졌습니다. 20여 명의 순례자들은 순식간에 중세로 시간여행을 간듯했습니다.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미국, 네덜란드 등 여러 나라에서 온 순례자들이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 즐겁게 식사를 했습니다. 식사 후에 봉사자들은 순례자 일행을 제단에 나와 둘러앉게 했습니다. 우리는 함께 기도했고 허밍으로 찬양을 했습니다. 아름다운 화음이 예배당을 가득 채웠습니다. 찬양 순서가 끝나자, 한 봉사자가 대야에 물을 받아왔고, 여기저기 물집이 터진 순례자들의 지치고 상한 발을 씻어 주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발을 말없이 정성껏 씻어 주었습니다. 모든 순서를 마치고 우리는 밖으로 나갔습니다. 별이 쏟아지는 하늘 밑에서 우리는 마음을 터놓고 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다음날 이른 아침, 봉사자들은 순례자들을 위해 아침까지 차려 주었습니다. 아침을 다 먹고 순례자들은 숙소에서 나와 다시 길 위에 섰습니다. 봉사자들도 따라 나왔습니다. 옛 순례자 복장을 한 봉사자들은 길을 떠나는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었습니다. 그러고는 한 명 한 명 깊게 안아 주었습니다. 우리 일행은 한 동안 말없이 걸었습니다. 같이 길을 걷던 이탈리아 친구가 제게 말했습니다. “니콜라스 교회 알베르게는 순례의 핵심이었어.” 저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니콜라스 교회 속에는 순례의 원형이 담겨 있어.” 그날 그 알베르게에서 같이 묵었던 사람들은 국적도 다양했지만 종교도 다양했습니다. 가톨릭교인, 개신교인, 무종교인. 그리고 성별도 나이도 직업도 길을 걷는 목적도 다 달랐습니다. 그러나 그런 인간이 만들어 놓은 선은 아무 의미도 없었습니다. 순례자들을 위한 봉사자들의 사랑은 모든 순례자들의 지친 몸과 마음을 위로해 주었습니다. 순례자들은 큰 사랑 안에서 하나 됨을 느꼈고 먼 길을 걸어갈 힘을 얻었습니다. 성 니콜라스 교회 , 그 안에는 교회의 본질이 담겨 있었습니다.

• 땅끝까지
바울은 복음을 땅끝까지 전하길 소원했습니다. 그 당시 세계관 속에서 땅끝은 스페인 북쪽 해변, 피스테라라고 부르는 곳이었습니다. 바울은 로마를 거쳐 스페인으로 넘어가 그 땅끝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려고 했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는 로마에서 순교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지리상의 땅끝까지는 가지 못했지만, 우리가 믿음 안에서 이르러야 하는 땅끝까지 간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율법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당시 세계적인 대도시였던 길리기아 다소 출신이었고 로마시민권자였습니다. 유대인이었지만 얼마든지 많은 권한을 누리면서 한 개인으로 꽤 괜찮은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율법에 헌신하기 위해 그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 가말리엘이라고 하는 랍비 아래서 율법을 배웠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과 성전과 율법을 무시하는 예수의 잔당들을 보게 되었고 분노했습니다. 율법을 애정하는 만큼 율법에서 벗어난 자를 증오했습니다. 율법을 허무는 자는 하나님을 허무는 자요, 바울 자신을 허무는 자처럼 여겨졌을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의 잔당을 다 죽이고 싶었습니다. 바울이 다마스쿠스에 있는 예수의 잔당들을 체포하러 가던 중 갑자기 하늘에서 환한 빛이 그를 둘러 비추었습니다. 더 이상 앞을 볼 수 없게 된 바울은 땅에 엎어졌습니다. 그때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바울은 되물었습니다. “누구십니까?” 주님이 답하셨습니다.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저는 그것이 바울의 땅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없애려는 자가 바로 하나님일 수 있다는 인식’ 그것이 우리 모두가 이르러야 하는 땅끝입니다. 내게 생명의 호흡을 불어넣어 주시고, 어둠 속에 있던 내게 빛을 주시고, 나 같은 이에게도 말을 건네 오시는 하나님이 내가 무시하고, 내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비난하는 사람 속에도 동일하게 역사하실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우리가 이르러야 하는 땅끝입니다. 초대교회가 유대인만이 아니라 사마리아인도 인정했을 때 땅끝에 이른 것입니다.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성령이 임하셨음을 인정했을 때 땅끝에 이른 것입니다. 자신이 목숨처럼 여기던 율법과 할례를 내려놓고 성령과 은혜를 인정했을 때 이미 땅끝에 이른 것입니다.

땅끝은 우리 사이에, 너와 나 사이에 수도 없이 많이 존재합니다. 그 땅끝까지 이르러 주님의 증인이 되는 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그리고 청파의 사명입니다. 청파교회의 초석 우로더 여사도 그 길을 가셨습니다. 내가 인식하는 세계보다 하나님의 세계는 훨씬 크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랑을 전하기 위해 인간이 만들어 놓은 여러 선을 넘는 것, 내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무시하는 사람 속에도 하나님이 계실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날마다 우리 모두가 땅끝까지 이르러 주님의 증인이 될 수 있길 기원합니다. 아멘.

- 거둠기도 -
주님, 교회설립기념일을 맞아,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는 주님의 말씀의 뜻을 새롭게 새겨보았습니다. 우리가 만든 세계 속에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을 가두지 않겠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 인간이 만든 여러 선들을 넘어서겠습니다. 더 나아가 내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비난하는 사람 속에도 하나님이 계심을 인정하며 살겠습니다. 주님, 오늘 우리의 결단을 지켜주시고 이 마음 가지고 날마다 땅끝까지 이르러 주님의 증인이 되게 해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등 록 날 짜 2023년 05월 07일 11시 54분 31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