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53. 거룩함의 탄생
설교자 김재흥
본문 마 2:1-11
설교일시 2023-12-25
오디오파일 s20231225.mp3 [15324 KBy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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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셨다. 그런데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말하였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에 계십니까?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습니다."
헤롯 왕은 이 말을 듣고 당황하였고, 온 예루살렘 사람들도 그와 함께 당황하였다.
왕은 백성의 대제사장들과 율법 교사들을 다 모아 놓고서, 그리스도가 어디에서 태어나실지를 그들에게 물어 보았다.
그들이 왕에게 말하였다. "유대 베들레헴입니다. 예언자가 이렇게 기록하여 놓았습니다.
'너 유대 땅에 있는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가운데서 아주 작지가 않다. 너에게서 통치자가 나올 것이니, 그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릴 것이다.'"
그 때에 헤롯은 그 박사들을 가만히 불러서, 별이 나타난 때를 캐어묻고,
그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말하였다. "가서, 그 아기를 샅샅이 찾아보시오. 찾거든, 나에게 알려 주시오.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할 생각이오."
그들은 왕의 말을 듣고 떠났다. 그런데 동방에서 본 그 별이 그들 앞에 나타나서 그들을 인도해 가다가, 아기가 있는 곳에 이르러서, 그 위에 멈추었다.
그들은 그 별을 보고, 무척이나 크게 기뻐하였다.
그들은 그 집에 들어가서, 아기가 그의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서 그에게 경배하였다. 그리고 그들의 보물 상자를 열어서, 아기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


1. 기쁜 성탄, 슬픈 현실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평화가 우리 모두와 함께하시기를 빕니다. 트럭에서 생선을 파시는 분이 계셨습니다. 트럭 위 현수막에 크게 이렇게 쓰셨습니다.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굴비” 그분에게는 영광굴비가 많이 팔리는 것이 평화였겠지요. 성탄절에 그저 계속 즐거워하고 기뻐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오늘 우리의 슬픈 현실 때문에 그러기가 어렵습니다. 지금 세계 곳곳은 전쟁 중입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일어난 지 벌써 만 2년이 거의 다 되어 갑니다. 사망자만 20만 명이 넘었습니다. 전쟁으로 집과 고향을 떠나 난민이 된 사람들은 600만 명이 넘습니다. 또한 러시아의 석유와 우크라이나의 곡물 수출이 막히면서 세계는 큰 경제적 타격을 입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전쟁 당사자인 러시아는 올해 경제성장률이 5.5%가 넘었습니다. 교역의 루트를 서구에서 인도와 중국으로 바꾸었기 때문입니다. 그로인해서인지 푸틴에 대한 러시아 국민들의 지지율이 70%가 넘습니다. 내년 3월 대선에서 재선이 확실시되고 있습니다. 푸틴은 내년에도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계속하겠다고 표명했습니다. ‘전쟁 계속’이라는 말이 우리를 암담하게 만듭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가자의 전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전쟁 3개월만에 가자지구에서는 2만명이 죽었습니다. 그중 70%가 민간인이었습니다. 어린이, 여성, 노인들이 죽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병원과 난민촌까지 폭격하고 있습니다. 서방에서는 이스라엘을 향해 공격의 강도를 낮추라 요구하고 있고, 하마스는 영구휴전을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총리는 “하마스를 완전히 제거할 때까지 전쟁을 멈추지 않겠다. 항복 아니면 죽음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하마스를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눈앞에서 이스라엘군이 쏜 폭탄에 아내와 아이들이 죽는 것을 보고 총을 들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요? 집에 있다가 이스라엘군이 쏜 미사일에 아빠와 엄마가, 동생이 죽는 것을 보고 가자 지하의 그 깊이와 끝을 알 수 없는 동굴처럼 마음속에 깊은 미움과 분노의 골이 생기지 않을 아이가 있을까요? 지금 가자 지구에서 끝없이 하마스를 양산하고 땅굴을 파고 있는 것은 이스라엘입니다.

들판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에게 천사들이 나타나 아기 예수 나심의 기쁜 소식을 알렸습니다. 그리고 찬양했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라는 천사들의 찬양이 전쟁 중에 있는 나라와 평화 없는 이 세상 곳곳에도 크게크게 울려 퍼지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2. 인간의 폭력성
마태복음에 나와 있는 성탄의 이야기를 살펴보겠습니다. 헤롯이 유대를 다스릴 때였습니다. 동방에서 별을 관찰하던 박사들은 유대의 왕이 탄생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먼 여행을 거쳐 예루살렘에 이르렀고 헤롯 왕에게 나가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나신 이가 어디에 있냐’고 물었습니다. 헤롯왕은 당황했습니다. 사람들은 예언에 의하면 베들레헴일 것이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헤롯은 박사들에게 ‘가서 아기를 찾으면 돌아와 나에게도 알려달라. 나도 가서 경배하겠다’고 했습니다. 박사들은 베들레헴에 이르러 별이 알려준 한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그곳에는 아기 예수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아기 예수께 절을 했고 가지고 온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선물로 드렸습니다. 동방박사들은 꿈에 헤롯에게로 가지 말라는 말을 듣고는 다른 길을 이용해 고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아기 예수의 아버지 요셉도 꿈에 헤롯을 피해 이집트로 가라는 말을 듣고는 그렇게 했습니다. 동방박사들이 자기를 속인 것을 알게 된 헤롯은 대노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 두 살 아래의 남자 아이들을 모두 죽였습니다.

첫 성탄의 풍경은 살풍경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말씀에 나온 헤롯은 2천년 전에 유대 땅에서 살다가 죽은 아주 폭력적인 왕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헤롯은 우리 인간 안에 있는 폭력성을 대표합니다. 자기의 자리와 권력과 이권을 위협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것이 작은 아기라 하더라도 완전히 제거해야 직성이 풀리는 인간의 폭력성을 상징합니다. 헤롯과 같은 이들은 이 세상을 어둡고 춥고 살벌하게 만듭니다.

헤롯의 이야기 속에는 또 하나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헤롯의 이야기는 일종의 ‘예고편’입니다. 예수님께서 헤롯과 같은 이의 폭력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유대의 지도자들이었던 제사장과 율법학자들은 예수님을 적대시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말하던 하나님과 율법과 성전은 순수한 하나님과 율법과 성전이 아니었습니다. 자기들의 지위와 권력과 이권을 뒷받침하기 위해 왜곡된 하나님과 율법과 성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회칠한 무덤이라고 비판하셨습니다. 지도자들도 예수님을 비판했습니다. 하나님을 모독하고 율법을 무시하고 성전을 무너뜨리는 자라고 몰아세웠습니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과 율법과 성전과 민족의 이름으로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3. 인간의 사랑
누가복음에 따르면, 나사렛에 살던 마리아와 요셉은 로마가 정한 법에 따라 고향 베들레헴으로 호적등록을 하러 갔습니다. 마리아가 출산을 하게 되었는데 아무도 방을 내어주지 않았습니다. 다행이 마굿간을 허락받아 그곳에서 몸을 풀게 되었습니다. 아기를 낳았으나 누일 곳이 없어 구유에 뉘었습니다. 우리는 이 성탄의 광경을 ‘거룩하다’는 느낌 속에서 떠올립니다. 그러나 그 일이 나와 내 가족에게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래도 거룩하다는 느낌이 드십니까? 불쌍하고 애처롭고 위태로운 광경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구유에 놓인 아기가 유대인의 왕이라는 외적 표지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베들레헴 마을 위에 떠있던 별은 그 마굿간만을 비추지 않았을 것입니다. 요셉과 마리아 그리고 그들의 아기는 그저 그 동네에서 가장 불쌍한 가족이었습니다. 동방박사들은 바로 그 가족, 가장 불쌍한 부부와 그들의 아기를 가장 귀하게 여겼습니다. 마치 왕과 왕의 가족처럼 여겼습니다. 그래서 그 앞에 엎드려 절했고, 왕에게나 바칠만한 선물인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바쳤던 것입니다.

헤롯이 우리 인간 안에 있는 폭력성을 대표한다면, 동방박사들은 사랑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헤롯은 자기의 자리와 권력과 이권을 위협하는 것은 작은 아기라도 죽이는 자였지만, 동방박사들은 아무리 보잘것없는 아기라 하더라도 그가 인간이라는 이유 하나로 가장 귀한 자로 여겨 그 앞에서 자기의 신분과 권력을 모두 내려놓고 자신이 가진 가장 귀한 것을 그에게 내어주었습니다. 동방박사와 같은 이들은 이 세상을 밝고 따스하고 살갑게 만들어 줍니다. 어느 시인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놓고 ‘이때처럼 인간의 잔학성을 보인 일이 없었고 이때처럼 인간의 깊은 사랑이 세상에 보인 일이 없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마지막뿐 아니라 예수님의 처음도 그랬습니다. 그때만큼 인간의 폭력성이 드러난 적이 없었고 그때처럼 인간에 대한 사랑과 존중이 드러난 적도 없었습니다.

헤롯의 이야기가 예수님의 생애를 예고하듯이, 동방박사들의 이야기 또한 예수님의 생애를 예고합니다. 동방박사들은 어두운 밤, 별을 보며 하늘의 뜻을 구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별을 보고 멀고 험한 길을 갔습니다. 그곳에서 가장 가난한 이들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가장 귀한 존재로 여겨 자기들이 가지고 있던 가장 귀한 것을 아낌없이 내어 주었습니다. 동방박사들이 보여준 모습은 예수님이 보여주신 모습과 동일했습니다. 예수님도 시대의 어둠에 짓눌리지 않고 하늘의 빛을 보며 사셨습니다. 하나님이 보여주신 빛을 따라 험한 길을 가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사회에서 사람으로 여기지 않던 사람들, 세리 창기 병자 이방인 아이 귀신들린 자를 귀한 하나님의 자녀로 여겨 주셨고, 그들에게 당신이 가진 가장 귀한 것,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어 주셨으며 끝내 당신의 목숨까지 내어 주셨습니다.

4. 거룩함의 탄생
성탄, 예수님이 탄생하신 그 밤은 거룩하신 분이 탄생하신 거룩한 밤이었습니다. 그러나 또한 무고한 아기들이 죽임을 당한 슬픈 밤이었고, 갓 태어난 아기를 누일 곳이 없어 구유에 누인 애처로운 밤이었습니다. 슬프고 애처로웠던 밤이 거룩한 밤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태어나신 분이 거룩한 분이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인간이 또 다른 인간에 대해서 자신이 표할 수 있는 가장 큰 존중과 사랑을 보였기 때문에 거룩한 밤이기도 했습니다. 그날 밤 마리아와 요셉은 갑작스런 손님들의 방문과 그들의 사랑을 통해 하나님이 자신들과 함께함을 온몸으로 느끼며 감동했을 것입니다.

24년 전 성탄전야 때의 일입니다. 저는 충남 온양의 작고 가난한 동네에서 목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20여 명의 어린이들과 그 아이들의 부모님 몇 분이 교인의 전부였습니다. 아이들과 성탄 전야 축하행사를 준비했습니다. 캐롤과 율동, 성극을 준비했습니다. 동네 어르신들도 초대했습니다. 아내는 이틀 전에 출산을 해서 아이와 병원에 있었습니다. 저 혼자 본행사를 준비하고 진행해야 했습니다. 시작 시간이 되었습니다. 아이들과 부모님들, 동네 어르신들로 교회가 어느 정도 찼습니다. 저는 앞으로 나가 시작멘트를 했습니다. 그런데 예배당 뒤쪽 문이 열리더니 반가운 얼굴들이 하나둘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전도사로 일했던 서울 창동에 있는 은명교회의 목사님과 교우들 20여 명이 그 밤 그 먼 길을 찾아오셨던 것입니다. 저는 멘트를 하지 못하고 잠시 그냥 서 있어야 했습니다. 아이들은 더 신나게 찬양과 율동과 연극을 했습니다. 잊지 못할 참 거룩한 성탄 전야였습니다.

평화 없는 세상입니다. 전쟁과 미움, 분노와 복수가 넘칩니다. 헤롯은 여전히 건재합니다. 자기의 자리와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사람 죽이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국가와 민족, 자유와 민주, 번영과 경제, 신과 종교의 이름으로 사람을 비인간화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슬프고 애처로운 성탄절은 반복되고 있는 것입니다. 성탄절을 거룩한 성탄절로 만들 동방박사들이 더욱 많이 필요합니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귀히 여길 때 거룩함은 탄생합니다. 오늘 성탄 예배를 드린 청파의 모든 교우가, 또한 이 세계의 모든 교회가 모든 생명을 귀히 여겨 이 슬픈 많은 세상에 성탄 - 거룩함의 탄생을 이루는 주님의 귀한 백성들이 될 수 있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아멘.

등 록 날 짜 2023년 12월 25일 19시 01분 58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