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52. 은혜를 입은 자
설교자 이범석
본문 눅 1:26-38
설교일시 2023-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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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를 입은 자
눅1:26~38
(2023/12/24, 대림절 제4주)

[그 뒤로 여섯 달이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천사 가브리엘을 갈릴리 지방의 나사렛 동네로 보내시어, 다윗의 가문에 속한 요셉이라는 남자와 약혼한 처녀에게 가게 하셨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천사가 안으로 들어가서,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기뻐하여라, 은혜를 입은 자야, 주님께서 그대와 함께 하신다." 마리아는 그 말을 듣고 몹시 놀라, 도대체 그 인사말이 무슨 뜻일까 하고 궁금히 여겼다. 천사가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마리아야, 그대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다. 보아라, 그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의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는 위대하게 되고, 더없이 높으신 분의 아들이라고 불릴 것이다. 주 하나님께서 그에게 그의 조상 다윗의 왕위를 주실 것이다. 그는 영원히 야곱의 집을 다스리고, 그의 나라는 무궁할 것이다."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였다.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겠습니까?" 천사가 마리아에게 대답하였다. "성령이 그대에게 임하시고, 더없이 높으신 분의 능력이 그대를 감싸 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한 분이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릴 것이다. 보아라, 그대의 친척 엘리사벳도 늙어서 임신하였다. 임신하지 못하는 여자라 불리던 그가 임신한 지 벌써 여섯 달이 되었다.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마리아가 말하였다. "보십시오, 나는 주님의 여종입니다. 당신의 말씀대로 나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과 함께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지난 한 주간 어떻게 보내셨는지요? 정말 많이 추웠지요. 한파의 영향으로 뼛속까지 꽁꽁 얼어붙은 것 같았습니다. 북극의 차가운 공기를 가두고 있던 제트기류가 지구온난화로 인해 약해져서, 결국 북극의 찬 바람이 한반도까지 내려왔다고 하는데요. 지구 온난화로 더 춥게 덜덜 떨며 지내야 한다는 아이러니 앞에서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기야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8) 기간 중, 기후행동네트워크가 '기후 악당’이라고 비판하며 수여하는 ‘오늘의 화석상’을 대한민국도 받았습니다. 화석연료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고도 기후 손실과 피해 해결에 전혀 기여하지 않고 있다는 이유였습니다. 이 추위도 자업자득이네요.
지구 한편에서는 한파와 폭설이 휘몰아치고, 다른 한편에서는 이상 고열로 바다생물군까지 휘저어놓고 있는 가운데, 전쟁의 끔찍한 소식은 여전히 그치지 않습니다. 뉴스를 통해 접하는 장면 장면이 우리를 가슴 아프게 하고 분노케 합니다. 우리는 평화를 원하고, 아름다운 생태계를 원하는데, 이 모두 요원한 듯해서 속상합니다. 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우리가 더 분명한 희망과 더 간절한 열의를 가지고, 주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기를 소망합니다.

* 사가랴
대림절 넷째 주일입니다. 주님의 기다리는 마음을 어떤 모양으로 빚고 계시는지요?
오늘 누가복음서의 말씀을 통해 기다림의 자세를 가다듬는 시간을 갖기 원합니다.

누가복음 1장에서 두 명의 여인이 아이를 잉태합니다. 누가는 두 이야기를 극적으로 대조함으로써 우리에게 새로운 혜안을 불러 일으킵니다.
먼저 세례자 요한의 가족 이야기를 살펴보겠습니다.
제사장 사가랴와 그의 아내 엘리사벳은 참으로 의로운 부부였습니다. 두 사람 모두 나이가 많았는데, 그들에게는 자녀가 없었습니다. 사가랴는 아이를 허락해 달라고, 주님께 간절히 간구했습니다.
어느 날 사가랴가 주님의 제단에서 분향하고 있을 때, 천사가 그를 찾아왔습니다. 천사는 말하기를,
“사가랴야, … 네 간구를 주님께서 들어 주셨다.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너에게 아들을 낳아 줄 것이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고 하여라.” (1:13)
세상에나, 드디어 사가랴의 기도에 주님께서 그대로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사가랴는 천사에게 이렇게 대답합니다.
“어떻게 그것을 알겠습니까? 나는 늙은 사람이요, 내 아내도 나이가 많으니 말입니다.” (1:18)

여러분, 사가랴는 분명 주님께 아이를 허락해 달라고, 간절히 간구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천사가 나타나서, 그의 아내가 임신할 것이라고 하니, 자신들은 나이가 많아서 잘 안될 것이라고 답변하고 있는 겁니다. 물론 갑자기 천사가 나타나서 두렵고 당황스러웠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과 달리 말이 헛나왔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진정으로 바라고 기대하며 간구하고 있었다면, 놀람과 감사가 뒤섞인 감격의 인사가 먼저 나와야 하지 않았을까요? 사가랴는 아이를 원하며 기도하고는 있었지만, 내심 마음 한편에서는 이제 나이가 많아졌으니 안 될 거야, 라는 마음이 더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늙어서 힘들 것 같다는 사가랴를 위해 뭐라 변명해 주고 싶어도, 마땅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지금 이 순간 갑자기 나이가 든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간구하는 내내 점점 더 늙어갔던 건 자명합니다. 나이가 많아져서 임신이 힘들어졌다는 인간적 한계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그는 자신이 갖고 있는 인간적 판단과 계산을 조금 더 신뢰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안 될 줄 잘 알면서도 마음이 힘들어서 그냥 푸념하듯 하나님께 간구해 보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어렵다고 하더라도 그러니 더더욱 하나님께 간구하고 희망을 품는 신앙이 그에게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 마리아
여기 또 한 명의 임신 이야기가 나옵니다. 바로 예수님을 임신한 마리아입니다. 그녀 역시 원하고 바라고 간구하며 살았던 사람입니다. 다만 아이를 배기를 바랐던 건 아닙니다. 그녀의 기도 제목은 무엇이었을까요? 이 질문을 품고, 잠시 마리아의 삶 곁에 다가가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천사는 갈릴리 지방 나사렛이라는 동네의 한 소녀 마리아를 찾아갑니다. 마리아는 요셉이라는 남자와 약혼한 채, 결혼식 날을 기다리고 있는 여인이었습니다.
천사는 마리아에게 말합니다.
“기뻐하여라, 은혜를 입은 자야, 주님께서 그대와 함께 하신다. … 두려워하지 말아라. 마리아야, 그대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다. 보아라, 그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의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1:28, 30, 31)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다는 것은 참 감격스러운 일입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하나님께서 은혜 즉 친절을 먼저 베푸셨으니, 그것을 알아차리라고 천사는 말하고 있습니다. 은혜로운 선물은 하늘로부터 이미 마리아에게 당도해 있습니다. 이제 그것이 얼마나 은혜로운지 인식할 차례입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놀라고 당황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우신 분인 건 잘 알고 있지만 이렇게 천사까지 나타나서 알려줄 정도로 특별한 선물은 뭘까, 하는 의아함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천사는 두 가지 아주 특별한 이야기를 덧붙입니다.
첫째로, 마리아가 아이를 낳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예, 맞습니다. 요셉과 정혼한 사이이기에, 언젠가 결혼식을 올리고, 아이를 낳아 기를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아닙니다. 그러니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통상적인 결혼과 임신, 출산에 대한 것이라면, 천사까지 나타나서 고지해 줄 필요는 없었을 것입니다. 천사의 말이 이상하다는 걸 마리아는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임신할 것이라는 천사의 말이 마리아는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둘째로, 그 아이는 위대하게 되고, 더없이 높으신 분의 아들이라고 불릴 것이며, 조상 다윗의 왕위를 이어서, 영원히 야곱의 집을 다스릴 것이라고 합니다. 이건 메시아에 관한 이야기가 분명합니다. 마리아를 비롯한 로마 제국의 치하에서 힘겨운 삶을 이어가던 이스라엘 민족은 그 누구나 다윗의 왕위를 잇는 메시아가 나타나서 그들을 구출해 주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자신을 통해 이뤄진다니, 갑작스러운 정도를 넘어서 생뚱맞기만 합니다. 마리아는 이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뭐라고, 나한테 이러시지?’ 자신이 마치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과 같은 존재가 될 거라고 말씀하시니 말입니다.

마리아는 지금 당장 아이를 갖고 싶다고 간구한 적도 없고, 자신이 메시아를 낳아 키우게 해 달라고 간구한 적도 없습니다. 그러니 천사의 예고는 이상하고, 낯선 것이었습니다.
물론 마리아 역시 간절히 하나님께 간구하는 기도의 제목이 있었습니다. 그녀의 소망, 그녀의 기다림은 이스라엘의 다른 사람들과 비슷했습니다.

* 마리아의 간절한 소망
마리아가 어떤 소망을 간절히 품고 있었는지 엿볼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가 마리아 찬가라고 부르는 눅1:46~55입니다.
그녀는 하나님을 이렇게 찬양했습니다.
“그는 그 팔로 권능을 행하시고 마음이 교만한 사람들을 흩으셨으니, 제왕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사람을 높이셨습니다. 주린 사람들을 좋은 것으로 배부르게 하시고, 부한 사람들을 빈손으로 떠나보내셨습니다. 그는 자비를 기억하셔서, 자기의 종 이스라엘을 도우셨습니다.” (1:51~54)

마리아는 하나님께서 자기 민족에게 베푸셨던 크나큰 긍휼과 구원을 기억하며, 메시아, 구원자를 보내주시길 꿈꾸고 있었습니다. 로마 제국의 끔찍한 제왕들을 끌어내릴 메시아, 자기 배를 최고의 가치로 삼는 성전 권력자들을 흩어버리실 메시아, 나사렛 동네에서 살아가는 비천한 사람들과 주린 사람들을 보살피시고 좋은 것으로 배부르게 하실 메시아, 평민의 가혹한 현실에 틈을 내어 균열을 일으키고 개입하셔서 하늘의 빛을 비추실 메시아, 그분이 오셔서 일하시기를 간절히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천사를 통해 주님께서 주시는 음성은, 마리아의 간절한 소망과 간구에 대한 주님의 응답이었습니다! 물론 마리아는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를 통해 하나님께서 그 일을 하시기를 바랐을지도 모릅니다. 최소한 자기를 통해 그 큰일을 이루실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런 마리아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겁니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마리아야, 그대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다.” (1:30)
여러분, 정말 하나님스럽지 않습니까. 이스라엘을 다스릴 다윗 왕의 후손을 예루살렘이 아닌 저 보잘 것없는 나사렛, 가난한 여인 마리아의 헌신을 통해 보시겠다는 것 말입니다. 만왕의 왕께서 비천한 말 구유에서 태어나신다는 역설은, 여기에서도 여실히 드러납니다. 주님은 우리의 상상을 깨뜨리기를 좋아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분은 가장 약한 것을 들어서 가장 크게 쓰시는 분이십니다.

천사가 계속 말합니다.
“성령이 그대에게 임하시고, 더없이 높으신 분의 능력이 그대를 감싸 줄 것이다. …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1:35, 37)

결국 마리아는 천사에게 대답합니다.
“보십시오. 나는 주님의 여종입니다. 당신의 말씀대로 나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1:38)

마리아는 하나님의 초대가 자신에게 어떤 어려움과 희생을 요구할지 알고 있습니다. 여성이 임신하여 아이를 출산하는 것 자체가 목숨을 건 일입니다. 고대에는 더욱 그러했습니다. 출산은 기쁨이요 보람이기도 하지만, 고통이자 희생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폐쇄적 가부장제 사회에서 혼외 임신과 출산이라니요. 어마어마한 사회적 멸시를 받을 것이 뻔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자리와 하나님과 함께 이루어가는 꿈이 더 소중하기에, 주님의 은혜를 입는 자리에 기꺼이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존재 전체를, 자신의 미래를 하나님께 온전히 맡겼습니다. 왜냐하면 그녀의 마음에도 다윗의 자손이 나타나서 민족을 구원하시리라는 소망이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그 꿈을 이 땅에 이루기 위해 함께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초대 손길을 꼭 붙잡았습니다. 그녀는 진정으로 간절히 바라며 기다리고 있었을 뿐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방식이 아니더라도 그 일이 이뤄질 수 있다면, 함께 그 길을 걸어갈 용기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이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께서 움직이신다면, 모든 혼돈과 암흑을 물리치고, 반드시 새 질서와 빛을 선사해 주실 것을 분명히 믿기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 은혜 입은 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자기가 세운 계획대로 착착 다 이뤄지는 사람입니까? 장수의 복, 재물의 복, 명예의 복을 누리는 사람입니까? 오늘 성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은혜 입은 자는, 다름 아니라, 하나님과 같은 꿈을 꾸는 사람이요, 하나님의 손과 발이 되라는 초대에 자기 몸을 움직여 응답하는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마리아처럼요.

* 신실한 순종과 거룩한 모험
대림절기 마지막 날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꿈을 함께 꾸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모습이라고 상상하십니까? 전쟁의 소문이 그치고, 평화롭게 서로의 손을 맞잡는 나라, 인간의 욕망 때문에 뜨거워진 지구 생태계를 다시금 되돌리는 나라, 가난, 차별, 소외, 인명 경시는 옛말이 되어버린 나라, 그 나라의 완성을 기다리고 있습니까? 그걸 얼마나 간절히 바라며, 간구하고 있습니까? 그 일을 이루기 위해, 내가 생각한 방식이 아니더라도, 전혀 예상치 못한 색다른 길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실 때에도 주님과 함께할 용기가 있습니까? 때때로 내가 희생하고 어려움을 겪을 수 있더라도, 하나님의 일을 위해 나설 뜨거운 마음이 있습니까?

마리아만 이런 특별한 순종과 모험을 한 것은 아닙니다. 성경에는 이런 대담한 이들의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웃음거리가 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커다란 방주를 지었던 노아, 고향과 부모님의 집을 떠나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방향으로 어딘지도 모른 채 길을 나섰던 아브라함, 40년간 도망자로 이국땅에서 양을 치다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이집트로 되돌아간 모세, 그리고 바리새파와 성전 권력자들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연약한 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병든 자, 귀신 들린 자, 가난한 자들을 돌보시고 일으켜 세우셨던 예수님, 고난의 잔을 마시고 싶지 않았으나 하나님께 순종하여 십자가의 길을 끝까지 걸었던 예수님, 우리 예수님까지. 이들은 하나님과 같은 꿈을 꾸고, 하나님의 발이 되어 진리의 길을 걷고, 하나님의 손이 되어 사랑의 수고와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렇듯 하나님과 단단히 묶인 이들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는 이루어져 갔습니다. 저 어둑한 변두리 땅, 한 연약한 개인의 신실한 순종과 거룩한 모험을 통해, 하나님은 공동체 전체를 비약적으로 변화시키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나사렛의 소녀 마리아의 꿈을 같이 상상했고, 그녀가 주님의 초대에 응답하여 행한 순종과 헌신을 보았습니다. 마리아를 통해 도전받고, 결단하여, 힘차게 주님의 길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여러분과 제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등 록 날 짜 2023년 12월 24일 12시 21분 38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