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3. 밥은 먹었니?
설교자 김재흥
본문 요 21:1~9
설교일시 2024-03-31
오디오파일 s20240331-2.mp3 [14265 KBy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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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말씀 -
그 뒤에 예수께서 디베랴 바다에서 다시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는데, 그가 나타나신 경위는 이러하다. 시몬 베드로와 쌍둥이라고 불리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제자들 가운데서 다른 두 사람이 한 자리에 있었다. 시몬 베드로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나는 고기를 잡으러 가겠소"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소" 하고 말하였다. 그들은 나가서 배를 탔다. 그러나 그 날 밤에는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다. 이미 동틀 무렵이 되었다. 그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들어서셨으나, 제자들은 그가 예수이신 줄을 알지 못하였다.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얘들아, 무얼 좀 잡았느냐?" 그들이 대답하였다. "못 잡았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리하면 잡을 것이다." 제자들이 그물을 던지니, 고기가 너무 많이 걸려서, 그물을 끌어올릴 수가 없었다. 예수가 사랑하시는 제자가 베드로에게 "저분은 주님이시다" 하고 말하였다. 시몬 베드로는 주님이시라는 말을 듣고서, 벗었던 몸에다가 겉옷을 두르고, 바다로 뛰어내렸다. 그러나 나머지 제자들은 작은 배를 탄 채로, 고기가 든 그물을 끌면서, 해안으로 나왔다. 그들은 육지에서 백 자 남짓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들어가서 고기를 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땅에 올라와서 보니, 숯불을 피워 놓았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여 있고, 빵도 있었다.

• 새롭게 살아봐라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영원한 생명으로 부활하셨습니다. 그 부활의 주님이 지금 이 시간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부활의 주님께서 주시는 생기와 사랑과 새롭게 하시는 은혜가 저와 여러분 위에 함께하시기를 빕니다. 그리고 지금도 계속 죽음의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위에도 생명과 부활의 주님께서 함께하시기를 빕니다.

사순절 동안 기온의 변화가 컸습니다. 춥다가 따스하다가 다시 춥다가 따스하다가를 반복했습니다. 아침마다 옷을 어떻게 입어야 할지 애를 먹었습니다. 사실 변덕스러운 날씨보다 우리를 더 힘들게 만든 것은 정치였습니다. 총선을 앞두고 대한민국은 연일 들썩거리고 있습니다. 모든 매체가 온통 총선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부디 많은 혼란을 겪은 만큼 국가를 안정화시킬 수 있는 좋은 인물들이 선출되면 좋겠습니다. 비록 날씨가 변덕을 부리고 정치가 혼란스러웠지만, 봄은 왔습니다. 교회 화단에는 청매화를 시작으로 홍매화와 산수유가 만개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긴 사순절을 지나 부활절에 이르렀습니다.

해마다 부활절을 맞을 때마다 하나님의 응원을 받는 기분입니다. ‘새롭게 살아봐라. 내가 겨우내 굳었던 땅 위에 새싹이 돋게 하고, 죽은 듯 메말랐던 나뭇가지 위에 새순이 돋고 꽃이 피게 하지 않았느냐. 그리고 내가 나의 죽은 아들도 새로운 생명으로 살려내지 않았느냐. 내가 너에게도 동일한 은혜를 내려준다. 다시 새롭게 살아봐라.’ 따스한 봄볕 속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듯합니다. 죽음을 넘어 생명으로 부활하신 주님의 은혜가 우리 안에도 온전히 임해, 우리 모두가 주님 안에서 다시 새로운 생명으로 살아갈 수 있길 기원합니다.

• 디베랴 바닷가의 또 한 번의 성만찬
오늘의 설교본문인 요한복음 21장은 예수님의 부활사건에 대한 말씀 중 하나입니다. 요한복음 안에서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세 번째로 나타나신 일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처음으로 나타나신 것은 부활절 저녁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유대 사람들이 무서워 문을 모두 닫아걸고 집안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가운데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8일이 지났을 때 예수님은 다시 한 번 제자들 가운데 나타나셨습니다. 앞서 예수님이 나타나셨을 때 그 자리에 없었던 도마를 위해 나타나신 겁니다. 도마는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했고, 그런 도마를 위해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못자국 난 두 손과 창에 찔린 옆구리를 보여주시며, 도마로 하여금 믿음을 갖게 하셨습니다.

그 이후로 시간이 지난 후에 베드로를 중심으로 몇몇의 제자들은 ‘고기를 잡으러 가겠다’며 디베랴 바다, 곧 갈릴리 호수로 돌아갔습니다. 제자들 무리의 행동이 좀 이상합니다.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미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두 번이나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마치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적이 없는 사람들처럼, 아니 아예 예수님을 만난 적이 없던 사람들처럼 그저 옛 자리와 옛 생활로 돌아갔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같은 꿈을 꾸고, 3년 간 온갖 기적을 체험하고, 이스라엘 곳곳을 누비며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를 맛보았던 사람들이, 마치 그 시간들과 그 감동과 그 체험이 없었던 사람들이 되어 예수님 만나기 전의 자리로 돌아간 것입니다.

제자들의 모습은 일종의 퇴행처럼 보입니다. 사람은 큰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한 후 그것을 감당할 수 없을 때, 마치 그 일이 없었다는 듯이, 그 일이 일어난 적이 없었다는 듯이 그 사건 전처럼 행동할 때가 있습니다. 갈릴리 호수로 돌아온 제자들은 마치 고기잡이에 모든 에너지를 다 써버릴 사람들처럼 열중했습니다.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로 나가 밤새 그물을 던졌습니다. 어쩌면 제자들은 두려웠을 것입니다. 고기잡이를 멈추는 순간 자신들에게 엄습할 공허함과 무의미함이 두려웠을 것이고, 자기들의 스승처럼 로마와 유대교 사람들에게 잡혀 죽임을 당할까 두려웠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밤새 그물을 던졌지만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빈 그물은 제자들의 심령의 상태였습니다.

동이 틀 무렵 예수님께서 호숫가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었을까요, 제자들은 스승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무얼 좀 잡았느냐?” 제자들은 답했습니다. “못 잡았습니다.” 예수님께 말씀하셨습니다.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리하면 잡을 것이다.” 제자들은 그 말씀대로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그물을 끌어올릴 수가 없을 정도로 많은 물고기가 잡혔습니다. 그제서야, 제자들은 그분이 예수님이신 것을 알았습니다. 제자들은 뭍으로 올라왔습니다. 땅에 올라와서 보니, 숯불이 피워있었고 그 위에 생선과 빵이 놓여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위해 마련하신 식탁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빵과 생선을 집어 제자들에게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21장에 나온 갈릴리 호수, 디베랴 바닷가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큰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잊어버린 제자들을 꾸짖지 않으셨습니다. 당신의 목숨을 내어주는 사랑과 헌신, 십자가의 희생, 부활의 기적 모두를 마치 없던 일처럼 여겼던 제자들을 벌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의 공허, 두려움, 퇴행, 머뭇거림을 모두 이해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휘청거리고 머뭇거리는 제자들을 위해 단지 당신의 변함없는 사랑을 다시 한번 보여 주셨습니다. 오늘의 성경말씀은 예수님과 제자들과의 첫 만남의 순간과 마지막 만남의 순간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갈릴리 호숫가에서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 요한을 처음 만나 그들을 제자로 부르셨을 때 일으키셨던 기적과 거의 동일한 기적을 다시 일으키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과의 마지막 시간이었던 최후의 만찬 때 하셨던 것처럼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심으로 또 한번의 거룩한 만찬을 행하셨습니다. 제자들은 흔들렸지만, 제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사랑은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고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 변함없는 예수님의 사랑이 흔들리던 제자들을 다시 붙들어 주었습니다.

• 밥은 먹었니?
그런데, 주린 제자들을 위해 밥상을 차려주신 예수님의 모습은 마치 엄마의 모습 같지 않습니까? 속 썩인 자식, 사고치고 밖에 나갔다 밤늦게 들어온 자식을 위해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밥은 먹었니?’ 물으며 상을 차려주시는 엄마의 모습. 그런데 복음서에서 보면 예수님은 늘 사람들을 먹이시는 예수님이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도 배고픈 이들을 향한 예수님의 연민에서 시작된 기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배고픔에 늘 마음을 쓰셨습니다. 육신이 배고픈 이에게는 빵을 주셨고, 마음이 배고픈 이에게는 영의 말씀을 주셨고, 정이 배고픈 이에게는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산다는 것, 믿음을 따라 산다는 것, 하나님 백성답게 산다는 것, 그것은 예수님처럼 다른 사람들을 잘 먹이며 사는 것입니다. 그게 신앙의 핵심입니다. 그게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합니다. 호숫가에서 식사를 마친 후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이야기를 나누셨습니다. 베드로가 여전히 당신을 사랑하는지를 물으셨습니다. 당신에 대한 베드로의 사랑을 확인하신 후에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마지막 당부를 하셨습니다. ‘내 양떼를 먹여라’ ‘내 양떼를 먹여라’ ‘내 양떼를 먹여라’ 세 번이나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인생이 바름에서 벗어나는 것은 먹으려 할 뿐 먹이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먹어야만 살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당연히 우리는 서로를 먹이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먹으려는 생각에 멈추어 먹여야 한다는 생각에 까지 이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 양떼를 먹여라’ 부탁하신 것입니다. 먹을 생각만 할 뿐 먹이려는 생각을 하지 않을 때 우리의 삶과 신앙은 의미를 상실하게 됩니다. 내가 먹을 생각을 넘어서 너를 먹이려는 생각을 할 때 우리는 예수님을 뒤따르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2017년 부활절, 안산 화랑공원 야외공연장에서 세월호 3주기 기억예배가 있었습니다. 자식을 잃은 수 백 명의 엄마아빠들과 그들을 주님 안에서 위로하고자 2,000여 명의 기독교인들이 모여 함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예배 장소였던 야외공연장은 언덕에서 호수로 이어지는 비탈에 둥그렇게 스텐드와 무대를 만든 곳이었는데, 제 눈에는 그 장소가 꼭 커다란 밥그릇, 국그릇처럼 보였습니다. 그 큰 밥그릇과 국그릇에 든 밥과 국을 먹으며 희생자들의 엄마아빠들의 허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채워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배 중 성찬식 순서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받기 위해 성찬 위원 앞으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희생자들의 엄마아빠가 성찬분급 위원으로 서 계셨습니다. 그분들이 나누어 주시는 전병과 포도주를 받아먹고 마셨습니다. 그 전병과 포도주를 받아먹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우리가 이 분들을 먹인다고 생각했는데, 이 분들이 우리를 먹이고 계셨구나.’

그렇습니다. 주린 자를 예수의 이름으로 먹이는 것이 결국에는 나를 먹이고 우리를 먹이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인생이 가져다주는 많은 문제 – 죽음, 두려움, 외로움, 고립, 공허, 허무 – 에 짓눌리지 않고 참된 생명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땅의 교회들이, 우리 청파교회가 해야 할 일도 그 일입니다. 서로를 먹이며 삽시다. 세상의 주린 영혼들을 먹이며 삽시다. 그것이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부탁하신 일이요, 죽음의 권세에 짓눌리지 않는 참 생명의 세상을 이 땅에 이루는 길입니다. 우리 모두와 이 땅의 모든 믿음의 사람들이 그 귀한 일을 능히 감당하는 사람들이 될 수 있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등 록 날 짜 2024년 03월 31일 11시 36분 39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