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컬럼

제목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렸네 2022년 08월 28일
작성자 김기석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렸네

“저보다 꼭 십년 위신데 십년 전보다 좋은 게 있다면 무엇인가요?” 사람들 사이의 갈등을 조정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후배가 물었다. 늘 긍정적이고 명석하게 일을 처리한다는 평판을 듣고 있는 그의 음성이 해질녘 서해 바다처럼 사뭇 쓸쓸하게 들렸다.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는 걸 알아차렸고, 열심히 일하면서도 결과에 따라 일희일비하지 않게 된 것이 십년 세월이 내게 준 선물 같아요.” 그는 사소한 차이 때문에 서로를 용납하지 못하고 분열에까지 이르는 세태를 탄식했다. 어제까지 동료였던 이들이 진영 논리에 따라 갈리면서 서로를 낯선 존재로 바라보는 현실이 아팠던 것이다.

통합을 지향해야 하는 정치와 종교가 오히려 사람들 사이에 경계선을 만들고 있다.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주장과 종교적 신념은 삶의 미세한 결을 무질러 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기 확신에 찬 사람일수록 견해가 다른 이들을 이해하고 포용하려 하지 않는다. 흑과 백, 선과 악, 옳음과 그름, 아름다움과 추함에 대한 이분법적 사고에 집착하는 이들은 그 사이에 있는 수많은 차이를 간과하곤 한다. 양 극단 사이에서 서성이는 이들에게 설 땅은 허락되지 않는다.

이청준 선생의 소설 ‘전짓불 앞의 방백’은 엄혹했던 좌우 대립 시기의 에피소드를 다룬다. 낮의 지배자와 밤의 지배자가 갈리는 산간 지방, 한 밤중에 누군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눈  앞에 전짓불을 들이대며 묻는다. ‘너는 어느 편이냐?’ 전짓불 너머에 있는 사람이 어느 편인지 가늠할 수 없는 상태에서 던져진 이 질문은 질문 받는 이를 벼랑 끝에 세운다. 이때 전짓불은 빛이 아니라 공포이고 어둠이고 폭력이다. 목숨을 걸고 진실을 지켜야 할 때도 있다. 그러나 모호함 속에서 부유하기도 하는 것이 인생이다. 양자택일의 강요는 점이지대에 머무는 이들에게서 설 땅을 빼앗는 일이다.

서 있는 자리가 다르면 세상도 달리 보인다.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렸네/멀고 가까움의 지세가 다른 탓이지“. 정약용 선생의 시이다. 작은 산이 큰 산을 가길 때가 많다. 작은 산 바로 앞에 서 있는 사람의 눈에 큰 산은 들어오지 않는다. 자기가 보고 있는 것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는 이들은 어리석다. 그들은 배우려 하지 않는다. 닫힌 마음이 지옥이다.

에밀리 에스파니 스미스(Emily Esfahani Smith)의 TED 강연 ‘삶에는 행복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를 보았다. 그는 삶의 의미를 구성하는 네 개의 기둥이 있다고 말한다. 첫째는 유대감이다. 서로의 가치를 인정하고 차이를 존중하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든든한 유대가 우리에게 살아갈 힘을 준다. 둘째는 목적에 대한 자각이다. 사람은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려 할 때 삶이 든든해진다. 셋째는 초월성이다. 현실 너머를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예술 작품을 감상하고 예배에 참여하고 글을 쓰는 행위는 바로 그런 능력을 우리에게 부여해준다. 넷째는 스토리 텔링이다. 사람은 저마다 자기 삶의 저자이다. 어느 누구도 우리 이야기를 대신 써줄 수 없다. 가끔 이야기가 이상하게 흘러가기도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 이야기를 수정하고 재구성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실패와 쓰라림, 부끄러웠던 기억 속에 머물 수도 있지만, 그것을 넘어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 경험들을 사회적 자산으로 만드는 이들도 있다. 바로 그것이 새로운 이야기를 쓰는 일이고 존재의 용기이다.

에밀리는 강연 말미에 자기 아버지 이야기를 들려준다. 수피교도였던 아버지는 늘 가족들과 더불어 명상하는 시간을 참 좋아했고 성실한 시민으로 살았다. 그런데 갑작스런 심근 경색으로 사경을 헤매게 되었다. 수술에 앞서 마취실에 들어간 그는 잠들기 전에 숫자를 헤아리기보다는 자기 아들과 딸의 이름을 반복해서 불렀다. 깨어나지 못하고 죽는다 해도 자기의 마지막 말은 사랑하는 이들의 이름이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는 정말 살고 싶어 했다. 자기의 돌봄을 필요로 하는 가족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 속에는 에밀리가 말하는 삶의 네 기둥이 다 담겨 있다.

삶은 고통의 연속이다. 고통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것은 고립감, 버림받음에 대한 의식, 무의미성이다. 하지만 우리 삶이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고 느낄 때 삶은 견딜만해진다. 옳음을 전유하려는 욕망은 연결을 끊는다. 적대감이 넘치는 세상에서 우정과 환대의 장소를 만드는 이들이 있다. 그들이 세상의 숨구멍이다. 눈에 보이진 않아도 작은 산 너머에 큰 산이 있음을 알아차리는 이들이 그리운 시절이다.

(* 2022/08/27일자 경향신문 '사유와 성찰'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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