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은평청파에서 첫 예배를 드리고... 2024년 02월 26일
작성자 K 집사
1. 제가 청파교회에 등록한 건 16~17년 전 일입니다. 10년 이상 교사로 봉사하던 이전 교회 출석을 중단한 뒤 적잖은 고민과 모색 끝에 만난 교회였습니다. 청파교회에 오신 분들이 더러 그러하듯이 저희 부부도 한동안 등록은 하지 않고 출석만 했지요. 이후 청파교회의 정식 교인이 된 뒤에는 아내도 저도 이 교회 출석하는 것을 자랑스러워했습니다. 밥 당번, 설거지 당번하는 것 이외에 별다른 활동은 하지 않았지만 ‘언제나 어디서나’ 청파교인인 것은 분명했습니다. 살면서 뭔가를 결정해야 할 때, 김기석 목사님의 말씀이 지남指南이 되기도 했지요. 말씀에 용기를 내어 20여 년 하던 일을 그만두었던 저는, 말씀에 용기를 내어 생각만 하던 일을 시작하기도 했습니다. 그동안 교회 활동엔 게을렀지만 교회가 제 삶에 미친 영향은 컸습니다.
 
2. 지난해 가을 김기석 목사님 은퇴와 새 담임목사님 선임, 은평청파교회 및 숨빛청파교회 파송 등의 소식을 숨 가쁘게 전해 들었습니다. 코로나 이후 영상예배만 주로 참석하던 저는 마음이 복잡해졌습니다. 본 교회에 남아야 하나, 집에서 가까운 은평청파로 가야 하나, 아니면 숨빛청파로? 결정을 위해 이전보다 빈번해진, 김재흥, 이범석, 손성현 목사님의 설교에 귀를 기울였지요. 누군가 좋은 교회 이야기를 하면 저도 모르게 관심이 가더군요. 오래 전, 청파교회를 만나기 전에 하던 행동들이었습니다.
 
3. 그러다 지난 18일 주일 1부 예배를 마친 뒤, 은평청파로 마음을 정했습니다. 이범석 목사님의 작별 인사를 보고서였습니다. 담임 목사님이 인사라도 하라며 목사님을 회중 앞으로 불러냈는데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절만 꾸벅한 뒤 들어가더군요. 이를 본 담임목사님은 “참 싱거운 사람”이라며 가볍게 타박하셨지만 저는, 울컥했습니다. 그가 삶의 가장 중요한 시기를 지나며 청파교회를 섬기는 동안, 그에게 일어난 일이 생각나서였지요. 그런 만큼 하고 싶은 말도 참 많았을 터인데. 그는 이 모든 걸 꾸벅 인사하는 것으로 대신하더군요.  천마디 말보다 더 많은 것을 전하는, 말없는 꾸벅.... 예배를 마친 뒤 집으로 오는 길, 아내에게 은평청파에 가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습니다. 아내는 기뻐하며 흔쾌히 동의했습니다. 알고 보니 아내는 이미 마음을 정한 뒤 저를 어떻게 설득할까 고심하고 있었다고 하더군요.
 
4. 연신내에서 구파발 쪽으로 가는 통일로 변, 박석고개 마루 조금 못 미친 곳의 3층 상가 건물. 얼마 전까지 ‘행복이 가득한 교회’로 되어있던 간판이 그사이 ‘은평청파교회’로 바뀌어 있더군요. 새 교회로 들어서니 청파교회에서 자주 뵙던 장영숙 전도사님과 몇몇 성도님이 반갑게 맞이해 주셨습니다. 일찍 도착한 김에 2층의 예배실 외에 청년부 예배실, 영유아방, 아마도 교회학교 공부방으로 쓰일 작은방, 3층의 식당과 목회자실, 목양실(담임목사실), 성가대 연습실 등등을 둘러보았습니다. 식당에는 이미 적잖은 분들이 차를 나누며 담소하고 계셨고, 성가대실에는 성가대가 찬양을 연습하고 있었습니다. 교회를 대강 살핀 뒤 예배실로 들어서며 자리를 헤아려 보았지요. 대략 100석 안팎, 여기에 20석 정도로 보이는 성가대석이 따로 있었습니다. 청파교회에서의 버릇대로 뒤쪽 구석진 자리를 찾았더니 아내가 앞쪽으로 이끌었습니다. 못 이기는 척, 예배실 앞쪽에 자릴 잡고 앉았습니다. 그동안 열성 신도들이나 앉는 것으로 치부했던 자리였습니다. 앞 자리에 앉는 사람답게, 착석하면서 기도도 잠시 드렸습니다. 하나님, 적어도 이 작은 예배실 정도는 가득 채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고요.
 
5. ‘임재의 기원’ 찬송으로 드디어 첫 예배가 시작됐습니다. 찬송을 시작하며 버릇처럼 목소리를 내는 둥 마는 둥 하던 저는 한 소절도 채 지나지 않아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회중에 대강 묻어가며 노래하는 척 하품도 슬쩍 하기도 했던 게 이 찬송을 할 때의 저였지요. 그런데 출석 인원이 많지도 않은 작은 교회에서 다른 분들의 목소리에 적당히 묻어갈 수 있는 상황은 아닌 듯했습니다. 찬송 38장 1절과 2절을 하는 동안, 단 한 소절도 빼지 않고 간절하게,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습니다.
 
6. ‘예배로의 부름’이 이어졌습니다. 태블릿 PC를 받쳐 든 이범석 목사님의 손은 살짝 떨리는 듯했지만 표정은 밝았습니다. 그는 청년 시절 늦은 밤, 파리에 도착해 숙소도 정하지 못한 채 북역 인근을 헤매던 배낭여행 때의 추억을 떠올렸습니다. 당시 배낭여행을 떠나던 이들은 숙소를 미리 예약하지 않고 불확실성 속에 자신을 던지곤 했다지요. 그도 이에 따라 숙소를 예약하지 않은 채 파리에 도착했다고 하는데요, 그날 밤 숙소를 잘 구했을 뿐 아니라 이후 이런 식으로 계속된 45일의 배낭여행에서도 숙소를 구하지 못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하더군요. 그러니까 은평청파의 시작 또한 숙소도 정하지 않은 채 떠난 배낭여행과 다를 바 없지만 그때 그 배낭여행이 그랬듯이 걱정은 전혀 하지 않는다고요.  돌아보면 20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의 저도 그랬습니다. 월세 등 각종 비용을 지출해야 하는데, 하루 전까지 비다시피 했던 통장이 기적처럼 채워진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지요. 지금 시작하는 일이 다른 일도 아닌 교회인데, 하나님께서 어련하시려고요.
 
7. 아직 가운도 마련하지 못한 성가대는 인원이 청파교회 1부나 2부 예배 성가대의 3분의1도 채 되지 않아 보였습니다. 남성 성가대원은 단 세 분 밖에 없었고, 이들이 만드는 화음 또한 아직은 어색했지요. 하지만 에너지와 열정은 이보다 훨씬 더 큰 성가대에 뒤지지 않았습니다. 찬양을 들은 느낌을 요약하면 '작은 성가대, 큰 감동'이었습니다.  찬양이 끝난 뒤 뒤쪽을 돌아보니 허걱! 그 사이에 예배실이 빈 자리 하나없이 가득 찼더군요! 만세~!!
 
8. 첫 말씀의 주제는 저 유명한 오병이어의 기적이었습니다. 목사님은 기적을 주제로 설교를 하며 그 배경이랄까 테두리, 즉 예수님이 아닌 제자들에게 주목했습니다. 다섯 개의 떡과 두 마리 물고기로 오천 명의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도 남는 기적이 가능했던 이면에는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떡과 물고기를 들고 무리에게 이를 나눈 제자들의 직접 행동이 있었다는 것이지요. 우리의 사랑도 그러하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을 내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을 넘어 사랑을 구체화하는 행동이 필요하다고요. 사랑하는 마음도, 사랑한다는 말도 참 중요하지만 이를 위해 땀 흘리고 정성과 시간을 들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씀이었지요. 그랬습니다. 돌아보면 우리는 흔히 누군가를, 뭔가를 사랑합니다. 사랑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몸은 게으릅니다. 행위가 없으니 사랑의 결과 또한 없습니다. 사랑에서 중요한 것은 애쓰고, 땀 흘리고, 함께 하는 시간인데 대부분 마음뿐이었습니다. 말뿐이었습니다.... 제 현실이 그래서인지 말씀은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김기석 목사님의 설교만큼이나 힘도 느껴졌습니다.  이젠 제게도 사랑은, 몸을 움직이며 땀흘리는 사랑이 되어야 할 것이었습니다. 내 귀한 시간을 내어 쓰는 사랑이 되어야 할 것이었습니다. 
 
9. 교회에서는 점심 식사까지 준비했더군요. 사정이 있어 식사를 함께 할 순 없었던 저희는 아쉽지만 교회를 나섰지요. 그런데 뭔가 낯설지 않은 느낌이 있었습니다. 무엇일까, 가만 생각하니 오래 전, 청파교회를 처음 만났을 때의 그 느낌이었습니다. 아~ 여기 참 잘 왔구나, 하는 바로 그 느낌이요. 멀지 않은 집까지 걸어서 오는 길, 노래를 좋아하는 아내에게 슬그머니 성가대 참여를 권했지요. 아내는 좋아했습니다. 저도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새 교회가 명실상부한 사랑의 공동체가 되기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도 없지 않을 텐데, 그게 무엇일까 하면서요. 역시 제게는, 순서가 돌아오면 밥 당번, 설거지 당번이나 하는 것이 제격일까요....
목록편집삭제

K 장로(24 02-29 01:02)
K 집사님,

은평청파교회 첫 예배에 참석하신 소감을 상세히 나눠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디에서 예배를 드리든 하나님께 함께 나아가는 믿음의 동역자임을 믿습니다.

생명과 평화의 청파 공동체 안에서 주님을 향한 믿음이 더욱 강건해지시길 바랍니다.
삭제
J성도(24 03-03 11:03)
K집사님 저도 설레는 마음으로 은평 청파 첫 예배와 그리고 오늘 두 번째 예배를 드리고 김기석 목사님 칼럼을 읽으러 이 곳에 왔다가 상세한 후기 (?)를 보고 반가워 댓글 남깁니다 ^^ 청파의 파송이 따뜻한 물결처럼 하나님의 사랑이 넘실되길 바라고 있어요 이 모든 것을 준비해 주신 하나님과 직접적으로 도움 주신 많은 교회 관계자분들과 목사님들께 감사 인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삭제
C권사(24 03-26 09:03)
잘 읽었습니다 많은 부분 공감되어 감동이고 은혜가 됩니다
청파인답게 “언제 어디서나 그리스도인” 올바르게 실천할 수 있기를 오늘도 기도하며 온 기독교인이 그렇게 살 수 있기를 중보합니다
삭제